너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니. 머리가 문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볼 때 생각한다. ‘바보’라는 말은 싫고 ‘얼간이’ 정도로 해두자. 머리는 이데올로기다. 왕은 먼 옛날부터 금색 왕관을 쓰고 세상에 등장했고, 지난 4월 영국 왕실 결혼식에 초대받은 유명 인사들은 머리에 멋쟁이 모자를 얹고 왔다. 장난감 모빌처럼 좌우로 뻗어나간 컬러풀한 모자들은 이색 풍경을 이뤘다. 머리는 힘이다. ‘종말’을 예견하거나 ‘여기가 천국’임을 설파했던 계룡산 종교단체들도 별 모양이나 십자가 형태로 된 종이 왕관을 만들어 제 머리 위에 올렸다. 머리는 진한 믿음의 표시를 올려놓는 자리다.
때때로 굳은 머리에 신선한 물방울을 뿌리는 남다른 머리 형상도 있다. 몇 달째 바라만 보다가 말을 튼 서울 종로구 효자왕족발의 간판이 그렇다. 간판에는 돼지머리와 가게 사장님의 머리가 한꺼번에 등장한다. 제사 때 상 위에 올라간 돼지머리나 접시 위에 놓인 돼지 얼굴을 한국 골목에서 이미 많이 보았다고? 이 간판은 만남의 방법이 다르다. 돼지 몸통 사진에 가게 주인의 초상을 1대1로 박아놓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흔히 음식점 간판 위에 두 발로 선 돼지들은 귀염 떠는 포즈로 음식 접시를 공손하게 들고 있다. 두 발로 들었을 텐데 손처럼 연기한다. 그러나 이 족발집 간판 전면에는 두 개의 머리가 겹쳐진 채 배치돼 있다. 얼굴 뒤로는 돼지 귀에 난 숭숭한 털이 리얼하게 나타난다. 뒤로는 돼지의 살구색 몸이다. 인간이 칼을 휘둘러 다룰 수 있는 존재인 양, 순화된 육식동물의 인형풍 표정은 여기에 없다.
족발집 사장님이 진두지휘한 이 간판은 독특한 이종교배를 보여준다. 동물과 사람 머리의 합체 그리고 디자인 과정에서 계획과 착오의 혼돈이 만들어놓은 결과다. ‘머슴에서 오너가 된 의리의 사나이’라는 문구가 명함 뒷면에 새겨진 음식점 사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독특하다고요? 하나를 보고 우리 식당에 대한 모든 걸 손님들이 떠올릴 수 있도록 이미지의 충격을 노린 건 맞아요. 그런데 제 아이디어는 원래 돼지 얼굴에 제 ‘눈매’만 쏙 넣어서 돼지의 믿음직함 느낌을 강조하는 거였어요.” 돼지머리에 사장님의 눈매만 넣어도 15년 장사를 했기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리라는 의지가 충분히 전달될 거라 생각했단다. 간판 제작자의 착오로 돼지의 눈·코·입은 사라지고 돼지머리 위에 사장님의 얼굴 사진 ‘전체’가 올려와버렸다. 그래도 사장님은 우연히 탄생한 이 간판에서 수많은 돼지를 기억한다. “어수선한 간판들 재미없잖아요. 장소만 마땅하면 돼지 모형을 설치하려고도 했죠. 돼지해에는 복돼지 명함도 만들었고요. 사료회사에 있을 때 수많은 돼지들을 봤는데 돼지들은 생각보다 참 깔끔하고 영리한 존재예요.”
다음날에는 역시나 몇 달째 봐온 동네 ‘인왕소머리국밥’ 간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가게는 이제 문을 닫았고 새 주인을 기다린다. 89살의 사장님은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참 많은 소를 보았어요. 내가 이 소 얼굴을 도안했지요”라고 말했다. 희한한 광경이 퍼레이드처럼 연속될 때 많은 일들이 평범하게 스쳐간다. 잔인함과 가련함, 동시에 찌릿함을 주는 동물 머리 간판들. 머리는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물건이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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