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생동한다’고 누가 말했지? 그 말 참 옳다. 요즘 자주 바라보는 인왕산은 늘 다른 각도의 빛을 받으며 바위의 결을 바꾼다. 선거 개표를 알려주는 뉴스 화면의 그래프도, 시장 물가도, 사람 마음도 끊임없이 오락가락 변하는 걸 보면 만물은 ‘변화무쌍’하다고 말할 법하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사물도 많다.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가 그중 하나다. 위치가 변함없을 뿐 아니라 움직이는 방식도 명확한 매뉴얼로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는 다들 차가워 보인다. 만져보면 기구의 온도도 차갑고 이미지도 차갑다. 목적 없이 흐느적거리는 몸짓이 아니라 신체 부위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운동을 권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직·수평의 ‘직각’을 강조한 모습은 재밌는 운동이 아닌 해병대 훈련을 염두에 둔 듯 과도하게 경직돼 있다. 실내 헬스클럽이 아닌 공원 운동기구일 경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면 기구는 녹음 속에서 더욱더 기운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운동기구는 ‘복부강화운동’ ‘허벅지강화운동’ 등의 이름을 내걸고 몸을 어떻게 기구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 문구를 단다. 안내문에 그려진 인물의 신체는 빨간 근육이 핏줄처럼 튀어나왔다. 내가 인왕산에서 눈여겨본 복부강화 운동기구는 엉덩이를 기구에 꼭 붙인 상태에서 해야 하며, 15살 이하는 어른을 동반해야 한다. 공원 운동기구 디자인은 이렇게 까다로운 지도자처럼 ‘허잇 허잇’ 구령을 붙일 태세다.
몸동작을 ‘제안’하고 때로는 강력하게 ‘제한’까지 한다는 점에서 운동기구는 고문기구와 외양이 닮았다. 복부강화 운동기구를 힘겹게 30회 하며 머리에 피어난 망상이었지만,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다리를 올리다 보니 춘향이가 목에 걸었던 칼처럼 운동기구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를 쓴 브라이언 이니스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고문기구는 아테네로 통하는 도로에 출몰했던 강도 프로크루스테스가 썼던 ‘침대’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철로 만든 침대 하나를 갖고 그가 잡은 사람 키가 침대보다 크면 몸을 침대 길이에 맞게 무참히 잘라냈다. 여기서 세계 최초 고문기구의 핵심은 침대가 저항 불가능한 고통의 ‘틀’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고문기구는 최초의 고문기구에 대한 반성 없이 신체의 자유와 에너지를 과격하게 제한하는 틀로서 기능한다.
생김새는 어째 좀 비슷하지만 운동기구는 고문기구와 내면이 다르다. 공원의 운동기구는 말하자면 영혼이, 있달까. 누군가 이 운동기구로 뛰어들 때 기구는 비로소 삐걱삐걱 움직이며 살아난다. 운동하는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새벽녘 세상에서 가장 힘센 뽀빠이처럼 두 팔 두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운동기구를 애용하는 이들을 보면 공공시설물로서의 운동기구가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나도 때론 그중의 하나다. 가장 신나게 이용했던 기구는 서울 삼청동 삼청공원에 있는 ‘하늘걷기’라는 운동기구다. 이름처럼 하늘을 걷듯 공중에서 두 다리를 리듬감 있게 움직이면 되는 거였다. 어른을 위한 미끄럼이나 정글짐이 있어도 운동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조금 부드러운 틀의 운동기구 말이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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