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에 빠져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물었다. “소중한 도구가 뭐야?” “음, 망치?” “아니, 직접 사용하는 것 중에서 말이야.” “나는 케틀벨(중량기구)이야. 그게 지금 내 힘 기르기에 최고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손짓을 하며) 땅을 다지는 도구 같은 느낌?” “그래서 그게 좋아?” “좋지,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취미네, 한마디로.” “그렇지.” “노동은 아니고.” “힘이 있어야 뭐든 하니까. 내 아주 훌륭한 도구야.”
빵. 원한 건 이런 대답이 아니었는데. 돈키호테의 투구 같은 대답을 원하기라도 했던 걸까? 누구든 자기만의 특별한 사물이 하나 이상은 있다. 몇만원짜리 필기구보다 내가 1천원짜리 검은색 제도샤프를 아끼는 것처럼. 샤프심을 샤프에 끼울 때 망친 오전과 다른 오후가 올 거라는 느낌이 오는 것처럼 나는야 참으로 사물에 의지해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 일과 관련된 사물이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전시를 준비하던 중 나와 동료는 갑자기 드라이버가 필요해서 동네 철물점 사장님에게 급하게 빌렸다. 환한 얼굴로 드라이버를 빌려주었던 사장님은 우리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드라이버를 돌려드리자 하늘이 내려앉을 듯 “이게 뭔 줄 알고 이렇게 안 돌려주는 거야?” 화를 냈다. 그가 소유한 물건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가 지켰어야 할 노동 시간과 태도에 금을 낸 것 같아 미안했다. 우리는 반성이란 이럴 때라면 틀림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겨울 제주도에서 본 해녀들의 도구는 정말이지 예뻤다. 물속에 들어갈 때 쓰는 튜브 비슷한 도구일 거라 짐작했을 뿐 이름은 몰랐다. 서울로 돌아와 찾아보니 형형색색 바느질을 한 이 사물은 해녀들이 물에 뜨는 데 쓰는 도구로 이름은 ‘테왁 망사리’다. 스티로폼으로 된 둥근 형태는 테왁(부력 도구)이고 그 주변에 달린 그물을 망사리라고 한다. ‘테를 두른 박’이라는 뜻의 테박에서 ‘ㅂ’ 탈락 현상이 일어나 테왁이 된 것이라고 백과사전은 알려준다. 자기 이름 석 자를 매직으로 쓴 것부터 꽃무늬 천, 알싸한 느낌의 자둣빛 천 바느질까지 내가 본 테왁은 한 가지 모양이 없다. 1960년대 중반 이전까지도 테왁은 잘 여문 박을 따내 만들었단다. 둥근 박과 바닷물 잠수의 만남이라니 중국 설화의 한 장면 같다. 구멍을 뚫어 박씨를 빼내고 물기 닦아 도구를 만들던 습관은 지금까지도 해녀들이 예쁘게, 자기 식대로 사물을 빚어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언제나 타인의 사물을 기분 좋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판사들의 지휘봉이나, 어느 정치인이 포탄이라고 했던 보온병을 치워버리고 싶은 순간도 많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건·사고에 사물들은 이름도 별 개성도 없이 동행한다. 여기에 디자인 운운하며 찬사를 보내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이른 새벽 숲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들 때의 심사로 주변에 있는 사물의 신비로움을 보고 싶다. 귀한 지면에 이어지는 ‘너의 의미 2’에서 난 좀더 명랑하게 아름답고 환하게 느껴지는 것들의 세계로 건너가보려 한다. 탁한 눈이 ‘안구 정화’되는 디자인 모험담을 쓰고 싶다. 생활에서 쪼금 먼 3만리까지 가야 할까?
독립 큐레이터
*‘현시원의 너의 의미’ 연재를 마칩니다. 현시원씨는 883호에서 좀더 명랑해진 ‘너의 의미’ 시즌2로 다시 독자들을 만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번엔 “의사들이 졌다” [신영전 칼럼]
[단독] 커지는 김건희 공천개입 의혹…선관위 “처벌 규정 없다” 발뺌
“가만히 계셔라…탄핵 빌드업은 김건희 여사가 나서서 하고 있다”
윤, 국군의 날 탄도미사일 현무-5 사열 [포토]
길이가 무려 2300만 광년…우주 최대 구조물 발견
윤 “북한 핵 사용 기도하는 그날이 정권 종말의 날”…국군의 날 기념식
“화투놀이 불화 있었다”…‘봉화 경로당 농약’ 용의자는 숨진 80대
법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이태원 참사에 미친 영향 인정
‘8표’…싸늘한 여론,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불안 퍼지는 국힘
이스라엘군 “레바논 남부 제한적·국지적 지상급습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