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돼지’이자 ‘얼간이’라고 불렀던 화가 달리의 독특한 풍채를 연상케 하는 한 남자가 등장했다. 리비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에 나올 것 같은 독특한 모자에 범상치 않은 의상으로 학살극을 펼친다.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한 이글거리는 눈빛에서도 알 수 있듯, 카다피는 자신에게 현혹된 얼굴과 제스처를 갖고 있다. 달리 뺨치는 놀라운 자기 연출력은 망토를 둘렀든 검은 선글라스를 썼든 간에 독재 정치인들의 특성이다. 카다피는 용서할 수 없는 제 만행을 시간이 지나면 쉽게 해결이 날 할리우드 영화의 클라이맥스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카다피와 그의 아들들만 빼놓고 전세계인들은 그의 얼굴에 분노한다.
지금 카다피의 얼굴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리비아 거리에 모인 군중은 피의 학살을 부른 강경 진압에 저항하며 그의 초상화를 방망이로 내려치거나 초상 사진을 모아 불태웠다. “내려놓을 권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카다피의 광기 앞에 진짜 권력이 없는 이들은 권력자의 이미지에 흠을 내며 격정을 터트렸다. 이 이미지를 향한 열정이 힘을 발휘하는 건 여러 사람이 연대해 머리 꼭대기에 군림하는 지도자를 형벌하려는 의지를 모았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매체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은 국경 없는 웹상에서 카다피의 얼굴을 데리고 논다. 카다피 패러디 동영상에는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부터 디즈니 만화까지 각종 영상과 사운드가 총출동한다. 연설 장면에는 힙합곡 (Hey Baby)가 덧입혀졌다. 패러디 영상은 거리의 초상화보다 절박함은 줄었으나 풍자와 유머의 감수성으로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사람의 얼굴은 이미지가 폭주하는 동시대에 여전히 개인의 ‘영혼’과 ‘기운’을 드러내는, 보호받아야 할 이미지다. 그렇기 때문에 초상을 파괴했을 때의 감정은 자극적이며, 폭발력은 구르는 눈덩이처럼 증폭된다. 카다피의 초상을 칼로 갈기갈기 찢는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면서 파괴되고 붕괴되었던 수없이 많은 우두머리들의 초상을 생각했다. 자기 권력에 현혹된 상태에서 제 얼굴 이미지에 빠져버린 지도자의 사례는 초상화의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초상화는 ‘왕 자신’이었기에 왕을 인간 중 가장 훌륭한 미덕을 갖춘 자로 묘사하는 것이 옛 왕들 앞에서 살아남는 법이었다. 중국 명나라 태조는 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초상화를 그려올 경우 그를 사형에 처할 만큼 극악무도했다.
독재자 왕이 동화책의 마법사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에 왜 여전히 어떤 지도자의 초상은 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독재자든 영웅이든 개인의 초상이 사람들을 열정에 빠뜨리게 하는 건 리비아 거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미술사학자인 톰 홀러트는 여러 나라에서 ‘이미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수집한 작업으로 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도 참가했다. 그는 정치적 시위나 유족들의 장례식, 각종 기념회에서 이미지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초상 이미지에 강렬하게 사로잡혀 있다는 데 주목했고, 이를 통해 초상 이미지가 군중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힘에 현혹되었던 독재자 카다피의 초상은 이제 어떻게 될까? 전담 간호사마저 떠나버렸다니 붕괴되는 초상의 운명을 막을 길 없을 것 같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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