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만성적 불경기, 독신녀들의 빛나는 경제력은 허상일지 모른다
김경/ 패션지 피처 디렉터
남자한테 의지하지 않고 저 홀로 돈 벌어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산 여자들은 그 나이가 되도록 순진하게 ‘사랑 타령’이나 하다가 실컷 얻어터지는 일이 많다.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여자들이 이미 제친 대상, 그러니까 현실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식물처럼 연약한 몽상가나 경제 활동보다는 나 홀로 예술 활동에 빠져 있는 문화 백수, 혹은 전망은 없고 꿈만 많은 연하남이나 결혼 생활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만신창이가 된 유부남이 바로 그녀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커플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다만 사랑이 끝나고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여자들은 많이 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죽기 전에 할 일이 있어. 그동안 네가 번 돈을 빈틈없이 쓰고 죽는 거! 결혼제도는 인간의 잉여생산물이 만든 악법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10원도 남기면 안 돼. 죽을 때 죽더라도 있는 돈은 죄다 쓰고 죽어야지!.” 그러면 다들 웃는다. 돈 쓸 궁리를 하니까 제법 신이 난다며 바보처럼 웃는다.
그만큼 독신 여성에게 ‘돈’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독신녀들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도 사실은 그 ‘돈’ 때문이다. 혹시 30대 독신녀를 선호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역시도 ‘경제적 자립성’ 때문일 확률이 크다. 하다못해 데이트 비용이라도 함께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남자한테 의존하는 여자는 쓸모없는 여자다”라고 까놓고 욕하는 무라카미 류 같은 남자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요즘 같은 만성적 불경기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자만이 남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돼먹지 못한 자신감을 갖고, 시사주간지 칼럼에 버젓이 ‘남편감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내는 뻔뻔스러운 여자도 생겨나는 거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여자는 데이트 비용 따위를 절대로 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여자들이 있다. 예전 같으면 ‘참 추하다’ 했을 텐데, 얼마 전 술자리에서 아티스트 낸시 랭의 얘기를 듣고는 ‘아뿔싸’ 싶었다. “데이트 장소에 나가기 전까지 여자들이 제 몸에 쏟는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세요. 전 그걸로 이미 충분히 데이트 비용을 지불했는데 왜 굳이 몇푼 안 되는 식사값까지 내야 하는 거죠?.” 그 얘기를 듣고 솔직히 감탄하고 말았다. 심지어 왠지 내 자신이 술값 몇푼 내는 걸로 자기 존재감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추녀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패션과 문화를 소비하는 독신자들의 경제력이라는 것이 실은 매우 하찮은 것이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빠듯하게 산다고 칭얼대던 전업주부 친구로부터 얼마 전 아파트를 샀다는 얘기를 들고 난 뒤부터다. 대체로 남자들은 푼돈을 벌어다주고 그걸 모으는 건 여자들의 몫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 싱글들이 몇년 뒤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핸드백이나 재킷을 사들이는 동안, 그들은 자산가치 있는 아파트를 사고 땅을 사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도 나 같은 멍청이는 아파트 청약예금을 하겠다는 계획을 무려 10년 동안이나 차일피일 미루어왔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10년 전에 첫 월급을 받자마자 청약부금만 넣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쓸모 있는 여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영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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