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 유행의 배타성, 가격 문의를 경멸하는 명품관 직원에게 배우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휴일에 소풍가는 마음으로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에 놀러 갔다. 뉴욕의 파크 애버뉴나 매디슨 못지않은 최고급 쇼핑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는 그곳에 가니 1층 매장에서부터 배타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 냄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이곳은 세계 최고만 모아놓은 곳이에요. 그러니 물 흐리지 말고 돈 없는 분들은 그냥 가시지요.”
하지만 그런 말에 결코 주눅들 내가 아니다. 비록 길거리 매장에서 산 싸구려지만 나는 트레이닝 팬츠에 원피스처럼 생긴 하늘거리는 톱을 입고 거기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이 정도 감각이라면 어떤 패션 매장에 들어가서도 당당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매장이라면 어디든 들어가서 물건과 가격을 살펴보고 어떤 건 입어도 봤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묘했다. 명품 매장에 들어가서 점원이 보는 앞에서 가격을 살펴보는 건 금기 사항이라더니(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몰래 가격표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피팅룸에 들어간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내가 가격을 살펴볼 때마다 점원들이 느닷없이 쌀쌀맞게 굴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매장에 있는 어떤 점원 눈초리에는 아예 경멸감이 서려 있었다. 내 친구가 무슨 티셔츠 하나에 20만원이나 하냐고 투덜거렸는데, 그 다음에 내가 빨간색 에나멜 지갑이 얼마냐고 묻자 그녀는 가격조차 알려주기 싫다는 듯 반응했다.
명품관 숍 마스터들의 오만함에 분개한 내 후배는 예전에 이렇게 말했다. “흥, 명품이면 지들이 명품이야. 영화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여봐란듯이 다른 매장에 가서 흥청망청 쓰고 싶다니까요. 매상 못 올리면 자기들만 손해잖아요. 흥, 바보들.”
나는 그들이 내 후배 말대로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아주 최근에야 알게 됐다. 싸구려 옷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명품 매장 직원들의 배타성은 결국 하이 패션의 궁극적인 속성으로 그들은 잘 훈련받은 훌륭한 직업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한계급론>을 쓴 토스타인 베블렌에 의하면 유행이란 상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층 계급과 구별하기 위해서 만든 거라고 한다. 그 때문에 상층 계급의 유행을 하층 계급이 모방하기 시작하면 상층 계급은 서둘러 그 유행을 폐기시키고 또다시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층 계급에 대해 당연히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거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전에는 명품을 그럴듯하게 카피한 싸구려 모조품을 사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조품들을 값싸게 대량생산함으로써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야말로 상류 계층의 오만함에 대한 하층 계급의 가장 확실하고도 악랄한 복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예전에 코코 샤넬이 돈 많은 고객을 부채질하는 동시에 벼락부자를 멸시하는 제스처로 값싼 모조 보석류를 몸에 걸리고 다녔던 것처럼 말이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본인들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르코르뷔지에나 장 프루베, 미스 반 데로에 같은 건축가들이 만든 1920년대 모더니즘 가구들이 상류층 부자 사이에서 무지하게 비싼 가격에 유통되고 있는 가운데, 내가 존경하는 어떤 건축가는 자기 집 거실에서 아이린 그레이와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가구랑 똑같이 생긴 모조품을 쓰고 있었다. 세상에 그토록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기능적이기까지 한 물건이 우리의 삶을 좀더 윤택하게 만들어준다면 그 모조품을 만들어서라도 좀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은 거장들도 자기가 만든 물건들이 더 널리 카피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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