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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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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심장을 훔치다

등록 2005-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젊음과 자유를 증폭시키는 젊은 <몽상가들>의 모즈룩과 히피 스타일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지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몽상가들>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60년대를 향한 오마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엔 뭔가 마법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때 우리는 뭐랄까…, 꿈꾸고 있었다. 우리는 영화, 정치, 재즈, 로큰롤, 섹스, 철학, 마약 등을 한 덩어리로 섞어놓았으며 난 최면에 걸린 듯이 그것들에 빠져들었다.”

1960년대에 대한 향수병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는 아주 흔한 질병이다. 젊음과 저항, 그리고 자유로 요약되는 60년대 청년 문화 안에서 패션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젊고 혁명적인 시기였다. 비틀스라는 새로운 종교의 영향으로 모즈룩(mods look)이 유행하고, 미니스커트가 처음으로 출현하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왠지 멋져 보이는 히피 스타일이 반항적인 젊은이들의 심장을 훔쳤다. 그 어느 때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옷차림이 유행했고 디자이너들은 패션의 모든 공식을 깨는 데 열중했다.

꿈꾸는 스무살 청춘들의 자유로운 유희를 거장의 힘있는 필치로 그려낸 <몽상가들>엔 60년대의 자유 정신을 대표하는 록사운드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같은 실험적 영화들, 그리고 멋지고 혁명적인 저항 패션이 절묘하게 끼어들어가 젊음의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먼저 영화는 1968년 파리를 배경으로 영화광인 미국인 유학생 매튜가 시네마테크로 향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때 그가 입고 있던 슬림한 슈트가 바로 60년대 영국에서 유행한 모즈룩이다. 꽃무늬 프린트의 셔츠, 통이 좁은 바지, 슬림한 재킷, 바지 끝이 넓은 판탈롱, 무늬가 큰 넥타이 등이 모즈룩의 주요 아이템이었는데 그것은 에드워드 시대의 우아한 복장 스타일과 풍습을 초근대적(다시 말해서 여성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거기에 사회에 초연한 듯한 태도를 취해야만 모즈룩을 완성할 수 있다. 베르톨루치는 매튜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트가 나르시스적으로 보여서 처음에 캐스팅을 꺼렸다고 하는데, 1960년대는 남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치장하는 데 열중하던 시기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캐스팅은 아주 적절한 것이다. 비틀스로 대표되는 모즈룩은 지금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데 메트로 섹슈얼들의 가늘고 긴 실루엣은 바로 이 모즈룩에서 온 모드다.

반면 섹스를 유희로서 즐길 수 있을 만큼 분방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근친상간적 사랑에 빠져들 만큼 자유로운 샴쌍둥이 남매의 옷차림과 태도는 지극히 히피스럽다. 히피들의 패션은 격식을 갖추지 않고 아무렇게나 입은 듯하지만 이상하게 멋이 나고 동시에 섹스어필한 차림이다. 베르톨루치가 ‘아름답고 외설적이다’라고 논평한 에바 그린(이자벨)이 영화 속에서 목욕 수건으로 즉흥적으로 만들어 입은 ‘금발의 비너스’ 차림이라든가, 이자벨이 지저분한 캐릭터라고 놀리는 남동생 테오가 알몸에 벨벳 재킷만 걸치고 골목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 속에서 히피 패션의 저항 코드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전쟁 대신에 사랑을 부르짖던 히피들은 꽃을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채택하여 꽃무늬 옷을 즐겨입고, 서구 중심의 도시 산업사회에 대한 저항을 동양이나 제3세계의 민속 복식에 대한 동경으로 표현했는데, 이자벨의 셔츠와 테오에게서 빌려입은 메튜의 오리엔탈 무드의 꽃무늬 가운데서 그러한 히피 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외설적인 이 세명의 몽상가들이 보여주는 최고의 패션은 알몸 그 자체다. 그들은 1960년대 젊은이들의 그 특유의 치기 어린 반항심으로 이렇게 질문한다. “왜 유희와 오르가슴이 혁명보다 항상 우위에 있어야 하는가?” 그건 결코 늙지 않는 몽상가 베르톨루치의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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