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자기만의 무엇’으로 망하기 직전에 칼럼을 마치며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이 지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딱 1년10개월이 됐는데, 얼마 전 술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A급 칼럼니스트 김규항 선배는 나의 1년10개월을 딱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해줬다. “굉장한 꼴값이었지.” 너무나 탁월한 품평이라, 한참을 웃었다.
그랬다. 상당한 ‘꼴값’이었다. 이쪽 편에서 보면 자기 전공도 아니면서 패션이나 스타일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꼽게 보였을 것이고, 저쪽 편에서 보면 패션 칼럼이랍시고 나처럼 근본도 없는 필자가 느닷없이 나타나 진보적 교양인들이 즐겨 보는 잡지의 귀한 지면을 더럽히는 꼴도 참기 어려웠을 거다. 하기야 그 귀한 지면에 버젓이 ‘남편감을 구합니다’라는 공개구혼장를 쓰고 저 자신이 좋아라 입었던 팬티까지 공개할 정도였으니 욕을 먹을 만도 했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그런 식으로 개성적인 글을 가장하여 자기 노출 욕구를 해소할 요량이면 차라리 일기를 쓰라’고 충고했다. 심지어 ‘원고료 때문이라면 자기가 원고료를 줄 테니 제발 <한겨레 21>에는 그만 쓰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스타일(Style)이다. 스타일은 고전시학에서 ‘무엇인지 모를 그 무엇’으로 정의된 문체로 주로 필자의 개성을 나타낸다. 그런가 하면 패션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정확히 꼭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스타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타일을 그저 외형적인 ‘멋’과 혼동하거나, 혹은 ‘바로크 스타일’이나 ‘히피 스파일’ 같은 말 때문에 어느 시대나 집단의 양식화된 형태로만 받아들인다는 거다. 더욱 안타까운 건 정반대 개념임에도 스타일과 유행이라는 말을 혼돈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행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 사는 것이라면 스타일은 분명히 자기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보그> 잡지의 아나 윈터라는 전설적인 편집장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천박한 스타일이 스타일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말하자면 글이든 옷이든 간에 거기에 ‘자기만의 무엇’이 있냐는 거다. 그리고 ‘그게’ 없다면 글쓰기든, 옷입기든 자기 표현의 영역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결코 어필할 수 없다는 거다.
꼴사납든, 꼴사납지 않든 나는 이 칼럼을 통해 내 자신을 드러내왔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나라는 인간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했는데, 그건 내가 글을 통해 저작자가 아니라 일개 인간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 경우 글을 쓰면 쓸수록 팬보다는 적이 많아지는데, 팬도 적도 만들지 못하는 칼럼니스트보다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위로해왔다.
그런데 스타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러한 긍정과 신뢰가 없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다른 무엇보다 스타일을 신뢰한다.
그러나 불행한 건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는 것도 곧 식상해지기 마련이라는 거다. 한 스타일을 너무 오랫동안 밀고 나가면 그 자신도 독자도 지겨워지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럼 망하는 거다. 그런데 난 지금 망하기 직전이다. 그게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를 마치려고 하는 이유다.
자신이 수백개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믿었던 니체는 모든 작품을 다 다른 스타일(논문 스타일에서 아포리즘까지)로 썼다고 한다. 나도 나의 다른 자아들과 상의해서 곧 새로운 스타일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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