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 스칼렌 요한슨, 마릴린 먼로로 치장하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여배우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최근 영화계에서 귀네스 팰트로나 니콜 키드먼 같은 스타들을 느닷없이 구닥다리로 보이게 할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급부상했는데, 실은 그 매력이라는 게 잘 읽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콜레트는 “손에 잡히지 않는 복잡하고 미묘한 매력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바로 스칼렛 요한슨이 그렇다.
갓 스무살을 넘긴 이 여배우에겐 권태로운 30대 기혼녀 같은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앳된 10년 소녀 같은 분위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타고난 미인 같기도 하고, 좀 이상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순진한가 싶으면 엄청난 요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그 절정이었다. 위대한 화가 베르메르의 손끝이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흠칫 놀랄 만큼 순진한 소녀지만, 마음속으로는 그와 ‘뇌가 터지도록 섹스하고’ 싶어하는 16살 하녀 역할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푸줏간 소년에게 달려가 욕망을 분출하는 ‘음란한’ 아이였다. 그런 복잡한 역할에 스칼렛 요한슨은 그 특유의 모호한 매력으로 엄청난 신빙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녀가 섹시한 여성인 동시에 엄청나게 영리한 배우라는 사실이다. 관능을 지성으로 조율한다고 할까? 얼마 전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컬렉션에 가면 모델들이 옷걸이처럼 비쩍 말라 있어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현실 속에선 그런 몸매를 갖기 힘들지요. 다행인 건 섹스 어필은 몸무게가 아니라 자신감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나 자신에게 편안하고 만족을 느껴야 비로소 섹시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건, 가슴이나 등, 힙을 비롯해 모든 걸 한꺼번에 보여주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아주 신중해야죠.”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영리하고 강단 있는 여배우가 가끔은 마릴린 먼로처럼 보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녀는 몇몇 시상식장에서 마릴린 먼로를 완벽하게 재현한 듯한 옷차림과 메이크업으로 나타나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실망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50년대 패션 아이콘이긴 했지만 마릴린 먼로는 여전히 내게 멍청한 섹스 심벌의 대명사였던 터라, 스칼렛 요한슨의 심리가 잘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어젯밤 마릴린 먼로가 쓴 반쪽짜리 자서전(쓰다 말았다. 조 디마지오랑 결혼하기 진전까지만 썼다) <마릴린 먼로, MY Story>를 읽어보았다. 읽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전혀 멍청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전혀 의도하지 많았지만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성적인 진동’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멍청하다고 단정내렸다. 먼로는 자신이 왜 열세살 때부터 섹시하고 위험한 여자가 돼버렸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땐 그저 단 한벌뿐인 고아원복이 싫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웃집 아이에게 빌린 작은 스웨터를 입고 학교에 갔다. 작아서 몸에 꼭 끼는 작은 스웨터…. 그러곤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칠 무렵 먼로는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란한 생각을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연예인 X파일’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들려줬기 때문에 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섬뜩했기 때문에 따로 읽을 필요가 없었다. 대신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다른 데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품행이 방정하다’는 것은 ‘여드름이 난다’처럼 어린아이들에게나 해당하는 말 같다.” 그런데 우리는 품행 방정도로 상품가치를 매긴다는 점에서 할리우드보다 더 비겁하고 유치한 위선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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