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1평의 러닝머신에서 탈출하길 충고하는 환상적인 부추김들을 따라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헬스클럽의 러닝머신 위에서 숨을 할딱이고 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제일 바보처럼 느껴진다. 어떻게든 살을 좀 빼고 싶다는 일념에 채 1평도 안 되는 좁다란 기계 위에서 멍청하게 제자리를 뛰고 있는 꼴이 한심하다. 게다가 정말이지 지루해서 미칠 지경이다. 숨은 왜 이렇게 가쁘고, 또 20분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달리기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게 아프리카처럼 언젠가 꼭 알고 싶은 신비의 세계다.
달리기에 환상을 품기 시작한 건 <중경삼림>이나 <포레스트 검프> 같은 영화 때문이었다. 실연당한 금성무가, 모욕당한 톰 행크스가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달리는 행위에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하루키가 아마추어 마라토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루키는 자신의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횟수를 늘려가고 한계를 조금씩 올려감으로써 내 속에 잠재해 있는,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었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어내보고 싶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직후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달리다 보면 평소에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게다가 그즈음 거의 모든 신문에서 서평을 토해낸 책 <나는 달린다>가 장안의 화제였다. 사실 스토리 자체가 얼마나 ‘섹시’한가. 다이어트의 시대에 112kg의 ‘잘나가는 정치인’이 1년 만에 37kg을 뺀 이야기니까.
그 책을 읽으면 정말로 달리고 싶어진다. 달리기는 단지 체중의 변화만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달리기는 그의 생활방식, 하루 일과, 식습관과 기호, 그리고 삶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총괄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그에게 자부심과 내적인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달리기를 하면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명상 상태에 이르고 산소목욕을 한 듯한 즐거운 기분이 들며 행복 호르몬도 분비된다고 했다. 달리기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며 달리기를 마친 뒤에도 그 휴식의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알게 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내가 나 자신과 담대히 만난다는 ‘자아여행’을 떠나기 위해 한 일이라곤 고작 운동화 한 켤레를 새로 구입한 일밖에 없다. 핑계를 대자면 달릴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었고 통 시간이 나지 않았다. 매일 생각만 했다. 달려야겠다고. 그러다가 신발장 안에 거의 신지도 않은 새 운동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시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말아톤>의 조승우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와 대학원을 동시에 다니는 벅찬 생활 속에서 틈틈이 연애도 열심히 하는 친구 L양 때문이다. 그 여자가 이제는 마라톤까지 한단다. 지난 가을엔 두 차례 하프코스를 뛰었다. 나는 그녀에게 왜 달리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 달리는지 물었다. “집 근처 한강 공원.” 최근 나는 서교동으로 이사를 했다. 멋진 운동화도 있고 한강 공원 근처로 이사도 왔으니 정말로 이제는 달릴 일만 남았다.
아아아, 그런데 저게 뭐지? 바람처럼 미끌어지며 한강 다리와 멋진 조화를 이루는, 저 바퀴 달린 물건 말이다.
“이 변덕스러운 여자가 홀린 바퀴 달린 물건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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