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의 ‘캠프’적 머리 모양이 말하는 한 움큼의 사상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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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부고 기사를 뒤늦게 인터넷으로 보았다. 여러 신문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는데, 그 중에서도 <한겨레>에 실린 수전 손택의 사진에서 나는 한참 동안이나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리 모양 때문이었다.
흘러내리는 오른쪽 앞부분만 하얗고 전체적으로는 검고 긴 머리였는데,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에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애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라는 타이틀과는 꼭 들어맞는, 그런 모양이었다. 고상하지 않을 뿐더러 눈에 띄게 기이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감수성’이 느껴지고, 어쨌든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는 점에서 ‘사제’다웠다.
오스카 와일드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진실성이 아니라 스타일”이라고 말했는데, 수전 손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지 헤어스타일만으로도 “사상이 담긴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1964년에 쓴 ‘캠프에 관한 단상’은 수전 손택을 뉴욕 문단의 스타 평론가로 만든 결정적인 글인데, 그 글에 담긴 ‘사상’이 하얗게 물들인 머리털 한 움큼에 담겨 그녀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수전 손택의 핵심적 예술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나 대상을 해석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을 회복하자는 것인데, 그 새로운 감수성 중 하나가 바로 ‘캠프’였다. 손택이 말하는 캠프의 본질은 고급 문화의 엄숙함을 폐위하고, “부자연스러운 것, 인위적이고 과장된 것을 애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탐미주의의 한 양식이기도 하며, “내용을 희생해 스타일을 취하는 예술”의 한 장르이기도 하며, 때로는 “대중문화의 시대에 어떻게 멋쟁이가 될 것인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어떤 동성애자는 캠프를 “게이 커뮤니티의 중추적 취향”이라고 설명하고, 나 같은 여자는 ‘수전 손택이 명망 높은 교수 신분으로 자기 머리통의 일부분을 하얗게 염색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다원적인 해석이 가능한 새로운 감수성이 바로 ‘캠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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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은 스타일로서의 예술을 열렬히 옹호하며, 문화비평가에서 소설가, 사회운동가, 때로는 영화감독이나 연출가로 끈임없이 변신을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헤어스타일도 변했던 것 같다. <해석에 반대한다>는 그녀의 대표적인 저서를 보면 그 중 두 가지 머리 모양을 볼 수 있다. 하나는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아하게 웨이브를 넣은 단발머리인데, 나로서는 둘 다 내 감각기관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고 불렸던 수전 손택의 헤어스타일과 대비되는 인물은 공교롭게도 진짜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이다. 힐러리는 남편의 임기 기간 동안 헤어스타일을 여러 번 바꾼 것으로 유명한데, 2002년 예일대 졸업식에서는 머리 모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 강의의 요지는 자기 같은 경우 가족도 예일대학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무척이나 애석한데 실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으로 헤어스타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힐러리는 실패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헤어스타일에 주목했지만 나로서는 그녀가 정치적 야심이 강하고 클린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불쌍한 영부인이라는 사실 말고는 그녀 자신에 대해서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 머리 모양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관객으로서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손택의 지적처럼 감수성은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메시지보다 항상 앞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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