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벤츠 택시와 자전거가 함께 하는 ‘뜨거운 도시’에 몰려온 명품 숍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얼마 전 아시아 언론을 위해 마련한 크리스찬 디오르의 2005 S/S 컬렉션 행사에 초대받아 상하이를 방문했다. 상하이가 뉴욕이나 도쿄에 견줄 만큼 핫(hot)한 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 꽤 여러 해가 지났지만, 나로서는 첫 방문이었던 터라 더욱 기대가 컸다.
상하이에 가서 가장 먼저 놀란 건 세계 건축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마천루 군락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마천루에서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골목마다 허름한 벽돌집이 즐비하고, 그 창문마다 누추해 보이는 빨래들이 잔뜩 널려 있는 대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는 거다.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걸려 있는 내복 바지의 두 가랑이 사이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초고층 빌딩이 겹쳐 보인다.
그런 대조와 겹침의 미학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도시가 바로 상하이였다.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올드 차이나의 정서가 느껴지는 푸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중국에서 가장 세련되고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낮에는 비즈니스를 하고 밤에는 여피처럼 노는 최첨단 시크 도시 푸둥이 있다. 벤츠 택시가 지나간 자리에 하얀 비닐봉지에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가는 노동자들의 자전거 행렬이 지나가고, 대형 트렁크 모양으로 지어진 루이뷔통 플래그숍 앞에서 버젓이 가짜 명품 시계를 파는 가난한 장사치들이 관광객들을 피곤하게 하는 도시가 바로 상하이였다.
두 번째로 놀란 건 청담동 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커진 명품 시장의 규모였다. 중국이 일본을 대신할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명품 브랜드들이 상하이 시장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생각도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명품 거리로 조성되고 있는 난징루에 파리와 도쿄에 이어 세계에서 단 3개뿐인 디오르의 고급제품 전용 매장이 생기는가 하면, 조르조 아르마니와 루이뷔통, 카르티에, 프라다 등 최고급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매장 규모를 늘리며 각종 대형 행사를 상하이에서 열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함께 동행한 패션 기자들 사이에선 ‘곧 상하이에 디오르 옴 매장이 생긴다’는 뉴스가 최대 이슈였다.
디오르 옴은 크리스찬 디오르의 남성 라인으로, 에디 슬리먼이라는 재주 많은 34살짜리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부터는 지구상에서 가장 감각적이고 세련된 남자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남성 브랜드로 떠올랐다. 특히 페미닌해 보일 정도로 슬림한 라인이 유명한데, 칼 라거펠트가 에디 슬리먼의 재킷을 입기 위해 30kg이나 감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된 브랜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시장이 작다는 이유로 아직 론칭하지 않아 많은 에디 슬리먼의 광팬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런데 그 옷이 상하이에 들어온다니? 패션지 기자들은 하나같이 편집증적으로 말라 보이는 남자들을 위한 디오르 옴의 극도로 세련된 라인을 소화할 수 있는 남자가 상하이에 몇이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디오르 옴의 론칭 소식이 전해지며 지금 청담동에서는 다시 한번 ‘왜 상하이인가?’ 하는 화두가 떠올랐다. 상하이에 겨우 2박3일 다녀온 사람으로서 헛소리를 하자면, 디오르 옴이 멋지긴 하지만 누가 봐도 배부른 부자처럼 보이는 옷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상하이 사람들은 ‘글쎄올시다’라는 반응이다. 아직까지 상하이 신흥 부자들에게는 명품 로고가 크게 박힌 브랜드가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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