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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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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의 트랜스젠더 클럽

등록 2005-04-07 00:00 수정 2020-05-03 04:24

욕망을 배설하는 사진작가 노부요시 아라키는 왜 이태원에 즐겨갈까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노부요시 아라키라는 일본인 사진작가가 일민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치를 때 일이다. 몇몇 페미니스트와 여성 미술인들이 아라키의 작품이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불과한 외설 사진이라고 미술관 밖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미술관 안에서 아라키와 평화롭게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솔직하고 재미난 인터뷰였다. 그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변태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깜찍한 피카추 머리 모양으로 젊은 여자들을 무장해제시킬 줄 아는 초로의 사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통 사람들은 욕망을 감추고 촬영하지만 나는 정직하게 표출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숨기는 쪽이 변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여자들한테 한번도 돈을 줘본 적이 없다. 나와 모델들은 언제나 연애 관계에 있었다. 내 사진에는 나의 욕정과 상대의 욕정이 모두 드러난다. 카메라라는 도구로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는 관계다. 그게 학대인가?”

그날 인터뷰가 끝나고 아라키는 이태원에 있는 트랜스젠더 클럽으로 달아났다. 아라키가 서울에 올 때마다 간다는 술집이었다. 그날 함께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솔직히 두려웠었다. 내가 자청해서 해삼 같은 걸 젖가슴 위에 올려놓고 그의 피사체가 되는 불가해한 사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게 아라키가 가진 힘이었다. 그는 정한 것 없이 그날그날 일기를 쓰듯, 배설을 하듯 사진을 찍는데, 상대방에게 스스로 무언가 내주고 상대로부터 무언가 내받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마음 맞는 친구들과, 그때 아라키랑 가지 못해 못내 아쉬었던 그 문제의 트랜스젠더 클럽에 갔다. 아라키가 좋아하는 곳이니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갔다. 클럽 안으로 들어서자 한복 입은 마담이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했고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한껏 강조한 옷차림의 아가씨들이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일행은 모두 여자 둘, 남자 둘이었는데 그들의 여성적 인격을 존중하고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즐겨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드디어 쇼가 시작되고 무척이나 실망하고 말았다. 잘 만들어진 알몸의 여신들이 슬픔도 기쁨도 아무런 정서도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춤동작을 몇분간 지루하게 반복한 뒤 테이블을 돌며 반강제적으로 돈을 받아갔다. 그뿐이었다. 게다가 그 재미없는 쇼를 관람하고 시키지도 않은 양주를 몇잔 마신 대가로 우리는 무려 100여만원이나 지불해야만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단돈 7천원에 눈과 귀가 뒤집히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전율을 맛보게 했던 ‘헤드윅’이라는 실패한 트랜스젠더 로커의 무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헤드윅 같은 여장 남자가 있긴 있었다. 성전환 수술 실패로 얻은 ‘성난 1인치’를 노래하는 헤드윅 대신, 아직 성전환 수술을 받지 못한 ‘가여운 5인치’를 핑계로 자꾸만 팁을 요구하는 헤드윅이 있긴 있었다.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아라키는 왜 그곳을 좋아하냐는 거다. 그는 촬영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고 했고, 내가 보기에 그녀들은 돈이 목적인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그날 밤 아라키는 그들에게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받아갔을까? 혹시 아라키가 즐거울 수 있었던 건 그 천박한 유흥 놀이에 귀족적인 미술관의 돈과 큐레이터들을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내 자신이 트랜스젠더를 욕망할 처지가 아닐뿐더러 원고지를 채워 신용카드 값을 갚아야 하는 소시민이라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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