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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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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살 필요는 없어

등록 2005-01-26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8개의 양말로 블라우스를 만드는 디자이너를 사랑하는 이유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패션지 기자들이 가장 흔하게 던지는 질문 하나. “혹시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나요?”

이럴 때 패션지 기자들을 가장 만족시킬 만한 답은 이런 거다. “마틴 마르지엘라나 후세인 샬라얀 같은 디자이너들을 좋아합니다. 잘난 척하지 않고 독창적이고 편안하니까요.”

이것만으로 패션지 기자를 ‘뻑’ 가게 할 수 있지만, 상대의 기를 좀더 제압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다음 문장도 추가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무이나 에크루 같은 멀티숍에서 이런 전위적인 디자이너들의 옷을 구입하는 게 가장 시크하다는 사람들의 하나의 쇼핑 패턴이 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열심히 구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됐든 간에 그것에 얽매이거나 휩쓸리는 제 자신이 싫으니까요. 물론 주머니 사정도 그다지 여의치 않고요. 다만 마틴 마르지엘라가 그러했듯이 8개의 흰 털양말로 셔츠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만큼 재단을 잘할 자신은 없지만 이런 옷은 엉성하면 엉성한 대로 의미가 있잖아요?”

실제로 그렇다. 마틴 마르지엘라나 후세인 샬라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패션지 기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 누구보다 패셔너블하되 속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탤런트 김주혁은 드리스 반 노튼, 마틴 마르지엘라, 앤 드묄레미스터 같은 벨기에 디자이너 리스트를 꿰차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자>의 8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누구보다 패션을 사랑하고 잘 안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따로 있다는 거다. 패셔너블한 소수의 일류들이 선택하는 디자이너들이 바로 마틴 마르지엘라나 드리스 반 노튼, 후세인 샬라얀, 그리고 듀오 블레스 같은 전위적인 디자이너들이다. 특히 그들은 일상과 예술 사이에서 애매하게 서 있는 사진가나 건축가, 혹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현대 미술 작가들에게 특히 지명도가 높다. 예를 들면 사진가 김현성은 후세인 샬라얀을 좋아하고, 아티스트 양혜규는 독일의 디자인 듀오 블레스를 좋아해서 베를린에서 제 손으로 블레스의 인터뷰 기사를 만들어 <바자>에 보내왔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은 무엇이 다른가? 레이 가와쿠보부터 시작해서 마틴 마르지엘라, 후세인 살랴얀, 그리고 블레스를 관통하는 코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거리두기. 화려하고 시끄러운 패션계에서 그들은 모두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인터뷰나 사진 촬영을 거부한 채 그들은 패션의 전통과 고정관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체해 아주 새로운 옷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새로움과 독창성이 그 두 번째 코드라는 얘기다.

특히 마틴 마르지엘라는 기존 의복을 재활용하여 손으로 오리고 붙여서 전혀 새로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유명한데, 특히 8개의 양말로 만든 블라우스가 압권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옷은 전체보다는 부분을 강조하기 때문에 디테일이 아주 독특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로고가 아니라 바늘땀이나 재단 방식 같은 남다른 디테일을 보고 그게 마틴 마르지엘라의 옷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기만의 작업에 몰두하는 건 후세인 샬라얀이나 블레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패션을 건축이나 일상의 공간 속에서 푼다는 점에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커피 테이블이 치마가 되고, 의자 커버가 드레스가 되고, 편지 봉투가 티셔츠가 되던 후세인 샬라얀의 2000년 S/S쇼. 정말 놀라웠다.

이런 디자이너들의 옷은 당연히 비싸다. 셔츠 한장에 30만원이나 할 정도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반드시 살 필요가 없다. 내가 알기로 그들은 판매가 목적인 디자이너들이 아니다. 그래서 더 동경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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