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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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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조작 복마전에 청부살인…코인에 코 베인 까닭은

법의 사각지대서 조직범죄 온상 된 가상자산 사기, 법원 판결문 분석… 2021~2022년 피해액 4조1474억원으로 보이스피싱 세 배
등록 2023-06-16 15:31 수정 2023-06-22 13:02
코인 투자 갈등에서 비롯한 서울 강남 4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유상원(왼쪽 사진)·황은희씨 부부가 2023년 4월13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인 투자 갈등에서 비롯한 서울 강남 4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유상원(왼쪽 사진)·황은희씨 부부가 2023년 4월13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 공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몇십만 개의 비트코인이 있는데, 내 고향 선배가 고위 공직자여서 나한테 이를 매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려고 한다. 내게 1억원을 빌려주면 이틀 뒤 원금을 주고, 3~4일 지나면 생기는 수익금 5억원을 나누자.”

“싱가포르에서 발행한 암호화폐인데 마스터카드로 현금 인출을 할 수 있고 오프라인 결제가 되며 온라인 카지노에서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코인 가격이 저렴한데 국내 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이어서 가격이 확실히 오를 거다.”

어떤 이에겐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고수익 투자처를 찾아 눈에 불을 켠 사람은 솔깃할 수 있다. 실제로 ‘고위 공직자’를 들먹인 사기범은 피해자한테서 1억원을 받아챙겼다. 코인 투자설명회에 참석했다가 가짜 ‘싱가포르 코인’을 믿고 사기범에게 돈을 보낸 사람은 122명, 피해액은 총 14억원이다. 이 사례는 2022년 하반기 선고된 가상자산 투자 사기 판결문에 나온 범죄다.

조직범죄 기승부려도 시세조종 처벌 어려워

가상자산(암호화폐·코인) 시장이 불법과 무법·탈법이 판치며 혼탁해질 대로 혼탁해졌다. 코로나19 이후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리면서 가상자산 투자 광풍이 몰아치자 투자금을 가로채려는 이들도 기승을 부렸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1~2022년 가상자산 범죄(사기·횡령 등) 피해액은 총 4조1474억원이다. 같은 기간 보이스피싱 피해액(1조3182억원)의 세 배가 넘는다.

<한겨레21>은 판결문 인터넷 열람을 통해 2022년 하반기에 선고된 가상자산 관련 사기 범죄 판결문 30건을 유형별로 살펴봤다. 코인 상장 또는 개발 예정이라며 투자금을 모은 사기 행위가 57%(17건)였다. ‘리딩방’(종목 추천 및 매도·매수 시점 조언 대화방)에서 투자정보를 제공해준다며 돈을 편취한 행위가 17%(5건), 보이스피싱 등 범죄수익을 가상자산으로 바꿔 개인 지갑에 보관하는 이른바 ‘자금세탁’이 13%(4건), 허위 가상자산 투자 프로그램 판매가 10%(3건) 등이었다.

투자 사기는 꽤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가짜 코인 투자 사이트를 만든 ㄱ씨는 2021년 필리핀에 사무실을 두고 조직원을 10여 명 뒀다. 이들은 국내에서 상담원 노릇 등을 하며 소셜미디어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들에게 “이 사이트에서 투자하면 단기간에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투자금 송금을 유도했다. 투자자를 속이기 위해 사이트엔 허위로 수익률을 표시했다. 이렇게 투자자 13명으로부터 3억원을 받아챙겼다.

판결문 30건의 처벌 근거 조항을 보면 83%(25건)가 형법상 사기죄였다.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이 13%(4건)였고, 방문판매법 위반도 1건 있었다. 현행법 가운데 가상자산 투자 관련 사기성 행위를 처벌하는 근거는 이 세 가지 법률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사기죄를 입증하는 요건이 까다로워 가상자산 거래소 내에서 벌어지는 미공개 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같은 불공정 거래까지 온전히 처벌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코인 시장에 MM 작업이 만연해 있다’

실제 거래소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기 행위는 더 심각하다. 이런 문제가 집약된 사례가 국내 4대 가상자산거래소 가운데 하나인 ‘코인원’에서 벌어진 상장비리다. 코인원 상장 담당 이사 ㄴ씨는 2020년부터 2년8개월간 브로커한테서 총 20억원을, 상장팀장 ㄷ씨는 10억4천만원을 받고 시세조종에 이용될 가상자산을 거래소에 상장시킨 혐의(배임수증재 등)로 2023년 4월 구속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이 사건에는 네 유형의 세력이 등장한다.(코인 상장 비리 구조도 참조) ①코인 다단계업자는 코인 발행사의 부탁을 받고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 유치를 하거나 메신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투자자를 유인해 상장 예정인 코인 투자자를 모집한다. ②코인 발행사는 코인 정보가 담긴 백서를 만들고 마케팅업체 또는 브로커를 통해 거래소에 코인을 상장시킨다. 상장 직후 거래량을 부풀리는 ‘유동성 조정*’(Market Making·MM) 작업도 한다. 이를 통해 가격이 충분히 뛰면 코인을 팔아(일명 ‘펌프 앤 덤프*’) 시세차익을 챙긴다. ③상장브로커는 코인 발행사에서 일정 수익을 보장받고 거래소 상장담당자들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해 신규 코인을 상장하는 역할을 한다. ④유동성 조정 업자는 코인 발행사에서 받은 착수금으로 상장 직후 프로그램을 통해 거래량과 시세를 관리한다.

서울남부지검 허정 2차장검사는 4월11일 코인원 상장비리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수사과정에서 코인 업계 관련자들이 ‘코인 시장에 MM 작업이 만연해 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일부 주식시장의 ‘전문가’들이 코인 시장에 유입해 허위 홍보에 가담하기도 한다. 코인 백서 및 홍보자료의 장밋빛 전망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므로 그대로 신뢰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유독 이런 사기 범죄에 취약한 구조적 특징도 갖는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시가총액이 크고 투자자 사이에서 비교적 신뢰를 얻은 코인과 달리, 유통물량이 적고 정체성이 불분명해 이른바 ‘잡코인’이라 하는 비주류 코인이 유독 국내 시장에 많이 유통된다.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58.2%인데, 국내 거래소에서는 33%에 불과하다.

이런 비주류 코인은 거래소 한 곳에만 상장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기준 단독상장 코인은 389종으로, 국내 유통 가상자산(625종)의 62%를 차지했다. 단독상장된 가상자산은 상장 폐지되면 다른 거래소로 옮겨 팔 수 없기 때문에 투자손실 위험이 크다. 2022년 하반기 단독상장 가상자산의 평균 가격변동성(최고점 대비 가격 하락률)은 72%에 이르렀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젊은 세대가 코인시장에 유입되면서 고수익 고위험을 좇는 투자 심리가 커진 게 비주류 코인 거래가 많은 원인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치코인’ 복마전에 청부살인까지

비주류 코인 가운데 한국인이 발행해 대부분 국내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이른바 ‘김치코인’이 있다. 2023년 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납치살해 사건은 김치코인의 일그러진 민낯을 드러낸 사례였다. 이 사건의 공소장을 보면 피해자 ㄹ씨 살인의 배후인 유상원(51)·황은희(49)씨 부부는 2020년 ㄹ씨의 권유로 ‘퓨리에버’라는 코인에 1억원을 투자했다. 3주 뒤 이 코인이 거래소 코인원에 개당 2천원으로 상장되고, 한 달 뒤 1만원으로 가격이 치솟자 부부는 피해자의 지인이 운영하는 발행사와 접촉해 퓨리에버 코인을 저가에 대량 매수해 국내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해 수익을 올리기로 했다. 부부는 발행사에서 80억원 상당의 퓨리에버 코인 3억5879만 개를 샀다. 하지만 구매 한 달 뒤 가격이 하락해 2021년 4월 개당 380원으로 폭락했다. 퓨리에버 투자자들의 항의가 잇따랐고, 부부는 ㄹ씨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ㄹ씨는 반대로 ‘부부가 시세조작을 해서 가격을 폭등시킨 뒤 투자자들 몰래 코인을 대량 처분해 가격이 폭락했다’고 주장했다. 부부와 ㄹ씨 간 갈등이 계속 커졌고 부부는 더는 투자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고 여겨 청부업자를 통해 ㄹ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코인 시장이 무법천지가 되는 동안 정부가 코인 범죄를 규제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 소홀했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됐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2년 10월 보고서에서 “국내 가상자산 불공정거래에 대한 입법 미비와 규제 공백은 심각한 수준이다. 현행법(사기죄 등)은 장외에서 발생하는 폰지사기 등 처벌에는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장내 대규모 거래, 온체인(네트워크의 일종)상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에는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현재 주식 등 금융상품은 자본시장법을 적용받아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처벌한다. 이 조항은 사기죄보다 폭넓게 ‘사기성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 예컨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사실만으로는 피해자를 ‘속일 의도’가 있었다고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기죄를 적용하기 여의치 않다. 자본시장법에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행위 자체가 불법이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면 이런 행위를 자본시장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2022년 테라-루나 코인 폭락 사태와 관련해 공동창립자 신현성씨를 2023년 4월 사기 혐의로 기소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도 포함했다. 테라-루나가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법원에서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큰손’들의 놀이터 막으려면

정재욱 변호사는 “미국에선 (특정 금융상품을) 증권의 한 종류인 ‘투자계약증권*’으로 규정한 선례가 많이 축적됐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가상자산마다 증권성을 판단해 현행법으로 규제한다. 하지만 한국은 (새로운 금융거래를)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한 사례가 거의 없어 현행 자본시장법으로 가상자산을 규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는 가상자산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는 별도의 법 제정을 진행하고 있다.

코인 투자자 보호의 핵심은 ‘투명한 정보 제공’이다. 가상자산 업계는 주식시장에 준하는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야 ‘투기성’이 줄어들고 건전한 투자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규제 공백이 길어지면 결국 가상자산 시장은 범죄집단과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몇몇 ‘큰손’들의 놀이터가 된다. 60억원어치 가상자산 투자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김남국 무소속 의원도 가상자산 ‘위믹스’ 발행사인 위메이드에서 미공개 정보를 얻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김 의원 소유 가상자산 계정을 특정한 코인 전문가 변창호씨는 5월30일 텔레그램 채널에 글을 올려 “코인판을 무법지대로 방치해 일부 업자가 해먹기 좋게 판을 만들어줬다. ‘정치인 김남국’ 사건보다 본질적인 것들에 포커스가 맞춰지면 좋겠다. 코인판은 너무 오래 썩어왔고, 소수의 자금세탁, 금융범죄 수단으로 전락하는 꼴을 여기서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용어 설명>

*유동성 조정(MM): 코인 상장 초기 거래 촉진을 위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포함해 사고팔기를 반복해 거래량을 부풀리거나 코인 가격을 목표지점까지 조작하는 행위를 통칭한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셈이다.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 주식이나 코인 가격이 급등한 뒤 다시 급락하는 패턴. 대체로 작전 세력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렸다가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조작 행위다.

*투자계약증권: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증권의 한 종류.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의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받는 계약상의 권리’를 말한다. 미국 금융당국은 일부 가상자산을 투자계약증권으로 분류해 규제를 적용한다. 한국에서 투자계약증권으로 적용받은 첫 사례는 2022년 “음악 저작권을 사고판다”고 광고한 뮤직카우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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