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유산 삼킨 반이민 거리…남아공에 드리운 제노포비아

2026년 6월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반이민 집회에 대규모 시위대가 참여했다. AP 연합뉴스
“처음 여기에 온 건 1940년대 초반이다. 이상주의와 희망으로 가득 찼던 때다. 50년 뒤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이곳에 모두 모일 수 있을 것이란 점을 그땐 생각도 못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1995년 8월19일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알렉산드라 지역에서 열린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시절 흑인이 밀집한 대표적 빈민촌이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내가 머물던 기간에 이곳 주민들은 부족이나 인종 간 차이를 두지 않았다. 코사족도 소토족도 줄루족도 아닌, 우리 모두는 ‘알렉산드라 주민’이었다. 그렇게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강요한 차별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외국인에 대한 증오심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슬프고 화가 난다. 알렉산드라는 단합과 연대의 전통이 있다. 이 위대한 유산이 최근 발생한 이주민에 대한 공격으로 훼손됐다. 피해자 가운데는 남아공 국적 취득자도 포함돼 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장기간 유지했던 공세적이고 적대적인 정책 탓이다.”

2026년 6월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반이민 집회에 참석한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32주년을 맞은 ‘만델라의 나라’가 분출하는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26년 6월30일 남아공 전역에서 120여 건의 크고 작은 반이민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은 마치앤마치 등 반이민 단체들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불법이민자 자진 출국 시한이었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작대기와 곤봉을 휘두르며 ‘아바함베’라고 외쳤다. 줄루족 말로 ‘그들은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날 하루에만 진압 경찰과 충돌하거나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둘러싸고 폭력을 행사한 시위대 등 900여 명이 체포됐다.
데일리매버릭 등 남아공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시위를 촉발한 결정적 계기는 4월2일 발생한 마즈위 쿠베카(27) 납치 사건이다. 요하네스버그 외곽 하우텡주 보슬루러스 지역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쿠베카는 사건 발생 당일 “가게 월세를 내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날 쿠베카는 귀가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먹통이 됐다.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이 반이민 단체를 중심으로 쿠베카의 ‘생환’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온라인 캠페인까지 벌어졌다. 쿠베카를 ‘불법이민자 범죄의 피해자’로 몰아간 게다.
실종됐던 쿠베카는 5월2일 밤 돌연 보슬루러스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경찰에서 “하우텡주 브락판의 카니발시티 인근에서 차를 탄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고 했다. 이어 “눈을 가린 상태로 어딘가로 옮겨져 감금됐다가 풀려났다”고 했다. 경찰 쪽은 “납치범 중 일부는 줄루어를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내국인의 범죄 가담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반면 반이민 단체 쪽에선 “납치범들이 반이민 여론이 거세지자 풀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먼 와서먼 남아공 스텔렌보스대학 교수(언론학)는 7월7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에서 “온라인상에 이미 ‘반이민’이란 화약이 충분히 뿌려져 있었고, 쿠베카 납치 사건이 그런 여론에 불을 댕긴 것”이라고 말했다.

2026년 6월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무인기로 촬영한 행진하는 반이민 시위대 모습. 신화 연합뉴스
남아공의 외국인 혐오증은 뿌리가 깊다.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에 딸린 ‘제노워치’ 연구팀의 최신 자료를 보면,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2026년 7월6일까지 남아공에서 발생한 외국인 혐오증 관련 범죄는 모두 1343건(누적 사망자 703명)에 이른다. 2008년 5월12일 알렉산드라 일대를 중심으로 발생한 유혈폭력 사태로 남아공 전역에서 모두 61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이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남아공 작가 겸 언론인 페조쿨레 음손티는 7월8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전국적으로 동시다발 집회를 열 정도로 반이민 단체 쪽에 충분한 자금이 공급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홍수 속에 주류 매체에서도 이들의 활동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짚었다.
범아프리카 여론조사 집단 아프로바로미터가 2026년 1월9일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자.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69%)은 ‘이주노동자가 남아공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83%)은 ‘정부가 나서 이주노동자의 입국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3명(32%)은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아예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남아공 사회의 ‘반감’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반이민 단체 쪽 주장과 달리 남아공의 이민자 규모는 인구 대비 4.1%(약 310만 명) 수준에 그친다. 세계 평균치(약 3.7%)보다는 약간 높지만, 영국(17%)·캐나다(22%)·오스트레일리아(30%)에 견주면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주민에 대한 적대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는 건 남아공이 처한 경제적 현실 탓이다. 남아공 통계청이 내놓은 2026년 1분기 고용통계를 보면, 노동 가능 연령대(15~64살) 인구는 모두 422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100만 명(49.7%)이 15~34살 청년층이다. 1분기 남아공의 평균 실업률은 32.7%로 집계됐다. 반면 15~24살 실업률은 60.9%, 25~34살 실업률은 40.6%다. 반이민이란 ‘주술’에 걸린 청년들이 6월30일 시위 때 거리를 가득 메운 이유다.
소득 불평등도 극심한 상태다. 세계은행의 최신 통계(2022년)를 보면, 남아공의 지니계수(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 소득분배가 평등하면 0에 가깝고, 불평등하면 1에 가까워짐)는 0.67로 세계 최악 수준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에도 인종 간 소득 격차는 여전하다. 현지 일간 메일앤가디언은 2026년 4월30일 “백인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은 2만5천랜드(약 230만원), 인도 등 아시아계 노동자는 1만5천랜드(약 138만원)에 이른다. 반면 흑인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은 5200랜드(약 48만원)에 그친다”고 보도했다. 백인 노동자의 평균 소득이 흑인 노동자의 380% 이상이란 뜻이다.

2026년 6월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반이민 집회에 참석한 시위대가 도로에 불을 지른 뒤 일제히 주변 건물 쪽을 겨냥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최악의 강력 범죄 발생률도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는 중요 요소다. 남아공 경찰청의 최신 자료를 보면, 2026년 1분기에 발생한 살인사건은 △1월 1744건 △2월 1538건 △3월 1899건 등 모두 5181건이나 된다. 하루 평균 살인사건이 57건 이상 벌어졌다는 뜻이다. 반이민 단체가 불법 체류자를 강력 범죄자와 등치 시키면서, 반이민 시위대는 “국가를 대신해 직접 행동에 나선 애국자”를 자처하고 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도 외국인 혐오증 조장을 한몫 거들고 있다. 남아공은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앞서 2024년 5월 치른 총선에서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처음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바 있다. 치솟는 실업률과 만연한 강력 범죄를 불법체류 외국인 탓으로 돌리면 유권자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대규모 집회를 하루 앞둔 6월29일 반이민 단체 지도부와 만나 외국인 혐오증에 대한 언급 없이 ‘평화 시위’만 강조했다.
학생운동가 출신인 라마포사 대통령은 노동운동가를 거쳐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는 만델라 전 대통령이 타보 음베키 부통령을 후계자로 지목한 직후인 1996년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기업인으로 변신해 막대한 부를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2014년 대선 때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면서 정계로 복귀한 그는 2018년 2월 제이컵 주마 당시 대통령이 안팎의 압박 속에 자진 사임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이후 2019년과 2024년 각각 의회에서 5년 임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의 보유자산은 31억랜드(약 2840억원) 규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집권 이전부터 성추문과 각종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던 주마 전 대통령은 아예 노골적으로 외국인 혐오증을 ‘정치적 무기’로 삼고 있다. 그가 2023년 12월 창당한 움콘토위시즈웨(MK·줄루어로 ‘민족의 창’)는 2024년 총선에서 14.59%(58석)를 득표하며 일약 원내 제3당으로 떠오른 바 있다. 현지 일간 데일리매버릭은 6월25일 “반이민 단체 마치앤마치의 대표인 저신타 응고베세-주마는 자기 단체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단체와 주마 전 대통령이 이끄는 MK당은 긴밀히 연계돼 있다. 마치앤마치의 재무책임자인 사넬레 캄불레가 2024년 총선에서 MK당 후보로 나선 게 대표적 사례”라고 보도했다. 남아공 독립 탐사보도 센터 ‘아마붕가네’(줄루어로 ‘쇠똥구리’)도 6월28일 주마 전 대통령과 반이민 단체 간 인적 연계를 파헤쳐 이렇게 보도했다.

2026년 6월30일 대규모 반이민 시위를 앞두고 말라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귀국행 버스를 타기 위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자리한 자국 공관 부근으로 몰려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라디오 진행자 출신인 응고베세-주마가 창설한 마치앤마치가 급격히 세를 키운 건 주마 전 대통령의 영향력 덕분이다. 마치앤마치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응고베세-주마의 남편 솔라니 주마는 또 다른 반이민 단체 아마빈카네이션을 이끄는 응기즈웨 음추누의 변호인도 맡고 있다. 음추누도 응고베세-주마처럼 라디오 진행자 출신이다. 음추누는 주마 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21년 5월 (주마 전 대통령이 법정모독죄로 15개월 형을 선고받고 구금되자) 콰줄루나탈과 하우텡주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폭동 사태 연루 혐의로 재판받은 바 있다. 그가 재판받는 2년여 동안, 주마 전 대통령은 자주 재판정에 나와 음추누를 응원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의 흑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는 이웃이었다. 수고로운 노동을 서로 위로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32주년,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웃이 아니다. 반이민 단체의 선동과 위협 속에 말라위·가나·나이지리아·짐바브웨 출신 등 이주노동자 2만5천여 명이 이미 남아공을 떠났다. ‘단합과 연대’의 전통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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