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거액 가상자산(코인) 투자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시기가 벌써 한 달 전(2023년 5월 초)이다. 유튜브든, 뉴스 화면이든, 텔레비전이든, 라디오든 어디를 틀어도 김남국 뉴스가 나왔다. 아니, 현직 국회의원이 수십억원을 들고 업무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가상자산 투자를 했다고?
불법 가능성부터 직업윤리 등 여러 쟁점이 나왔다.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급조된 법안도 하나 통과됐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 법이 있더라도 국회의원이 아들이나 딸 명의로 가상자산을 보유할 경우 국민이 알기 어렵다. 여러 의혹에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던 김남국 의원은 여전히 국회의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고무적인 사실이 딱 하나 있긴 하다. 바로 폭풍 같았던 약 2주간의 ‘김남국 주간'에, 일반 시민이 가상자산을 좀더 알게 됐다는 점이다. 특히 가상자산 투자에 업비트나 빗썸 같은 중앙화 거래소에 가진 돈을 넣고 단순히 가상자산을 사고파는 차익 추구 활동만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금융투자 활동인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도 있음을 알았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2022년 디파이를 이용해 1년간 2300여 건의 거래를 하며 수익을 불렸다. 가상자산을 사고팔거나, 타인의 금융거래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종의 ‘전주' 역할도 하며 한때 최소 60억원어치의 가상자산을 보유했다. 이렇게 ‘짠돌이 청년'에서 숨겨진 ‘코인 투자 달인'으로 김 의원의 이미지가 변모하는 사이, 생소한 단어이던 디파이도 시민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디파이는 탈중앙(Decentralize)과 금융(Finance)의 앞머리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은행처럼 중앙화된 기관 없이 시스템과 알고리듬에 의해 금융서비스가 이뤄지는 체계를 말한다.
금융서비스의 핵심은 돈을 유통하는 것이다. 전통 금융에서는 이 역할을 은행 등 금융회사가 한다. 싼 이자로 예금을 유치해서 그 돈으로 대출해주고 비싼 이자를 받는다.
디파이도 하는 일은 비슷하다. 유통되는 게 법정통화가 아니라 가상자산일 뿐이다. 독특한 점은 중간에 낀 금융사가 없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러 디파이 프로토콜은 이 비용을 사용자를 유인하는 데 쓴다. 수백 퍼센트(%)의 파격적인 연이율을 제공하거나, 디파이 프로토콜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덤'으로 다른 가상자산을 얹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그래봤자 실체도 없는 코인 받아서 뭐 하냐'고 묻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실제 시장의 반응은 그런 의문과 온도차가 좀 있다. 디파이가 갓 나온 2020년 1월 초, 디파이 생태계에 예치된 자산 규모(TVL)는 6억달러(약 7600억원) 정도에 그쳤다. 이 수치는 2022년 1월 1600억달러(약 203조원)로 2년 만에 266배 증가했다.
흥행의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시장이기에 파격적 조건을 내건 고위험 금융상품이 많이 나왔다. 조건에 혹한 사람이 다수 달려들어 거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디파이 분야 가상자산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김남국 의원이 디파이 투자로 수익을 올렸던 시기도 바로 이때다.
2023년 현재는 디파이 시장이 많이 침체된 상태다. 디파이 데이터 사이트 ‘디파이라마' 집계에 따르면 6월13일 현재 디파이 분야 TVL은 전성기 대비 4분의 1 수준인 430억달러(약 54조원) 정도다. 장기간 이어진 미국발 금리인상이 코로나19가 촉발했던 글로벌 유동성을 잡아먹으면서 디파이 분야에도 일종의 거품이 걷혔다.
한국에서는 현직 국회의원의 디파이 투자를 그저 이색적인 투기 행위로 금기시하는 것 같다. 글로벌 규제 기관들의 시각은 다르다.
주요 20개국(G20)의 국제 금융당국 협의체인 금융안정위원회(FSB)는 2023년 2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디파이 활동의 규제 방안과 대응 방법을 망라한 가상자산 프레임워크를 7월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디파이의 성장이 전통 경제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디파이와 실물경제가 얽힐 경우, 디파이의 위험이 실물로 넘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구체적 위험 요소로 과도한 레버리지(투자 배율) 허용과 가격 조작이 꼽힌다. 디파이에서는 전통 금융에 비해 레버리지 규제가 관대하기 때문에 부채가 과도한 회사가 갚을 능력이 없음에도 상환 능력보다 큰 유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단기간에 대량의 매수 혹은 매도 주문을 넣는 방식으로 가격을 급격하게 변동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부풀어오른 유동성이 한 번에 터지며 연쇄 청산이 일어나면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처럼 금융위험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금세탁 관련 위험성도 있다. 미국 재무부는 2023년 4월 내놓은 디파이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과 랜섬웨어(사용자의 컴퓨터 파일을 암호화한 뒤 돈을 요구하는 해킹 공격) 조직 등이 디파이 서비스의 취약점을 활용해 자금세탁을 일삼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제도권 금융기관은 자사를 거쳐가는 자금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지만, 디파이는 이런 규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자금세탁 범죄자의 도구가 된다는 얘기다.
한국은 디파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할 준비를 못하고 있다. 디파이가 현행 법규로 규제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022년 11월 내놓은 ‘탈중앙화금융(DeFi)의 현황과 법제 정비 방향'이라는 이름의 위탁연구 결과보고서에서 현행 은행법이나 자본시장법으로 디파이를 규제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가상자산 거래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법률에 디파이 거래를 포함해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이런 상황에 ‘김남국 사태'가 터진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선출직 국회의원이 주식 판 돈을 다 털어 가상자산에 올인하고, 또 거기서 거둔 수익금으로 전세자금을 마련하는 세상이다. 가상자산 투자와 주식 투자를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 흐름에 맞춰 합리적인 방향으로 한국의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면 좋겠다.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전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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