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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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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인생이 있다

서킷 위 달콤한 가속
등록 2014-10-18 15:25 수정 2020-05-03 04:27
폭스바겐코리아 제공

폭스바겐코리아 제공

서킷엔 인생이 있다. 직진 구간에선 한없이 가속페달을 밟고 싶다. 120, 140, 160, 180(km/h)…. 직진 구간 아니면 언제 달려보겠는가. 총 3.9km 정도 되는 구간 가운데 회전 구간이 20번이나 되는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 이 끝에서 만나는 직진 구간은 상쾌하다. 전설적인 포뮬러원(F1) 레이서 미하엘 슈마허처럼…. 속도계 바늘은 끝을 모른다.

바늘이 올라갈수록 도로 밖 알림판 숫자는 200, 150, 100, 50(m)으로 떨어진다. 직진 구간이 끝나고 곧 회전 구간이 나온다는 경고다. 그때부턴 속도를 계속 높이고 싶다는 생각과 이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너무 늦게 속도를 줄이면 차는 도로를 넘어 충돌할 것이고, 너무 빨리 속도를 줄이면 다른 차가 내 안쪽 코스를 노리고 들어와 추월할 것이다.

규칙은 있다. 브레이크 알림판을 따라 속도를 줄이는 것. 회전 구간에는 천천히 들어간 뒤 절반쯤 돌아서 빠르게 가속해나가는 것(슬로 인 패스트 아웃). 바깥 코스에서 회전 구간의 안쪽을 파고든 뒤 나갈 때는 바깥 코스로 직진하는 것(아웃 인 아웃 탈출) 등이다. ‘슬로 인 패스트 아웃’은 실제 회전 구간 도로에서 안전하고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이보다 가속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저 차만 따라잡으면 되는데’ ‘여기서 좀더 시간을 벌어놓으면 되는데’ ‘우승 트로피가 눈앞인데’. ‘일단 로켓에 타라’고 말하는 자기계발서처럼 직진 구간은 성공을 향한 로켓에 탈 수 있는 기회다. 어떻게 맞은 기회인데 가속페달에서 오른발을 쉽게 뗄 수 있을까. 저 사람만 잡으면 앞자리가 내 자리고, 여기서 좀더 일하면 성공이 눈앞인데 말이다.

하지만 포뮬러원 경기에서는 승부가 직진 구간에서 나지 않는 것을 가끔 본다. 쇼트트랙과 비슷하다. 직진 구간에서 너무 빠른 나머지 회전 구간을 크게 돌아 상대에게 안쪽을 허용하거나, 효율적으로 회전 구간을 돌며 힘을 아낀 다른 차가 먼저 튀어나간다. 최근의 발달된 자동차 기술도 이를 돕는다. 최근 폴크스바겐 시승 행사에서 경험해본 XDS+(전자식 디퍼렌셜 록) 시스템은 강력했다. 요즘 차에는 전부 달린 ESC(차체자세제어장치)보다 한발 더 나아가 회전 구간에서 차가 아예 미끄러지지 않게 팍팍 잡아준다. 함께 탔던 레이싱 선수도 일반인이 타는 양산차에서 이게 가능하냐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닥쳐올 회전 구간은 없는 듯 내달리는 달콤한 가속은 부질없어졌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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