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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름이 뭐니?

<엔진의 시대> 미국 역사·사회를 자동차 15대로 해부하다
등록 2016-02-26 02:52 수정 2020-05-03 04:28
1959년식 캐딜락 엘도라도. 자동차 꼬리로 이어지는 측면 패널은 제트기의 동체를 닮았다. 테일핀 뒤쪽으로 2개씩 장착된 빨간색 미등은 별명이 ‘쌍방울’이었다. 제너럴모터스 문화유산센터/ 사이언스북스 제공

1959년식 캐딜락 엘도라도. 자동차 꼬리로 이어지는 측면 패널은 제트기의 동체를 닮았다. 테일핀 뒤쪽으로 2개씩 장착된 빨간색 미등은 별명이 ‘쌍방울’이었다. 제너럴모터스 문화유산센터/ 사이언스북스 제공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자동차 디자인을 뽑으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한국 자동차 중에 애써 고르라면 아마 YF쏘나타가 처음 출시됐을 때 반응(지금의 쏘나타 디자인은 보편적인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정도가 생각난다. 이것도 지금 보면 그리 희한하지는 않는데, 이상한 디자인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테일핀’이다.

테일핀은 트렁크 위에 길쭉하게 솟아오른 생선 꼬리 모양처럼 생긴 디자인을 말한다. 오래된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끔 나오는데 바람을 가르는 것인지 바람을 막는 것인지 아리송한 디자인을 보면 그게 틀림없다. 한 미국 자동차 업체는 1960년에 이를 두고 ‘방향 안정기’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테일핀이 없는 보통 차보다 더 곧고 똑바로 주행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나 뭐라나. 하버드 경영대학원도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대형 테일핀을 창시한 크라이슬러 임원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했다니 믿을 만도 하겠다.

하지만 를 쓴 미국의 폴 인그래시아 기자는 이를 두고 “터무니없는 언어도단”이라고 했다. 지금이야 ‘테일핀이 방향 안정기라니 그게 말이 돼?’ 하고 넘어가지만, 당시는 미국이 소련과 군비 및 우주 경쟁을 하던 때였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디트로이트에서도 ‘큰 놈이 짱이다’라고 경쟁이 붙을 때라 큰 꼬리를 붙여놓고 ‘조종이 더 잘돼’라고 해도 믿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당시는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미국 자동차에 자유와 방종, 화려함을 뽐낼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고 테일핀 디자인은 그때의 상징이었다.

얼마 전 손에 들어온 를 읽는 것은 흥미진진했다. 편집부국장을 지낸 저자 폴 인그래시아가 15대의 자동차로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해부했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은 잘 빠진 스포츠카 머스탱의 판매를 늘렸고, 베이비붐 세대는 아이가 생긴 뒤 스포츠카와는 딴판인 미니밴으로 갈아탄다. 결혼한 여성은 아이 학교와 스포츠클럽을 왕복하는 ‘사커맘’이 됐고, 인구학적으로 이를 알아본 크라이슬러는 미니밴을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품질 불량에 대한 관심도 늘어난다. 1960년대 자동차 회사의 책임을 묻는 변호사 랠프 네이더가 혜성같이 등장해 소비자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후 네이더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플로리다주에서 9만5천 표를 얻었다. 당시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는 이 선거에서 앨 고어에게 간발의 차로 승리했다. 네이더 지지표는 민주당 후보 앨 고어와 겹쳤다. 만약 네이더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를 스타로 만든 결함투성이 차가 없었다면, 미국 대통령에 부시가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차가 역사를 바꾸었다고나 할까.

또 아이를 가지지 않은 ‘여피족’(도시의 젊은 고소득자)의 선택은 BMW였다. 미국에 점령됐던 독일의 작은 자동차 업체는 미 중산층의 꿈이 된다. BMW만이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은 모든 자동차 업체의 결전장이었다. 폴크스바겐이 효율 좋은 ‘비틀’을, 혼다가 잔고장 없는 ‘어코드’를, 도요타가 연비가 뛰어난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를 들고 침공한다. 아쉬울지 모르지만 현대자동차는 여기에 끼지 못했다. 외국 자동차 브랜드의 약진과 고유가는 테일핀부터 시작해 픽업트럭까지 덩치 큰 차를 선호한 미국 자동차 업체를 코너로 몰아버린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끝을 맺은 책은 최근 떠오른 자율주행차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운전면허를 따고 첫 시동을 걸고 바퀴를 굴리는 것에서 흥분을 느꼈던, 그리고 자동차가 전자제품처럼 변해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충분히 향수를 자극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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