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
폴크스바겐 차도 없고, 폴크스바겐이 해준 것도 없지만, 폴크스바겐은 매력적인 회사였다. ‘역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아 괜히 미운’ 일본의 도요타와 ‘덩치 큰’ 미국의 GM을 물리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뛰어올라서가 아니다. ‘공산품은 독일이지’ 도 아니다. 그냥 보여주는 게 멋있었다.
① 프리미엄의 민주화. 자동차 상품 설명을 듣다 ‘민주화’라는 이야기에 탄복했다. 2년 전 신형 해치백 자동차 ‘골프’를 한국에 출시한 날, 폴크스바겐의 개발 담당 임원 올리히 하켄베르크 박사는 영상을 통해 “프리미엄의 민주화다”라고 선언했다. BMW·벤츠 등 고급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성능을 일반 자동차에서도 느끼게 해주겠다는 자신감이었다. 비싼 부품을 쓰지 않고 기술을 통해 이를 가능케 한다는 말. 자동차가 이런 것을 내걸 수 있다는 게 매혹적이었다.
② 클린 디젤. 독일차가 한국 수입차 시장을 휩쓴 것은 디젤(경유)엔진의 힘이었다. 대기오염 주범이라고 꺼리던 디젤차는 ‘클린 디젤’이라는 새 옷을 입었다. 가솔린엔진 위주였던 미국과 일본 차들은 시장에서 패퇴했다. 진격을 이끈 폴크스바겐은 기술을 내세웠다. 다른 독일 브랜드들이 디젤엔진이 내뿜는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요소수 등을 이용한 방식을 써 비용이 더 든 데 반해, 폴크스바겐은 기술로 해결했다고 했다. ‘클린 디젤’은 소비자에게 먹혔다. 2014년 나온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클린 디젤 호감도는 2008년 51.1%에서 2012년 70.3%로 뛰어올랐다.
③ 노동자 경영 참여. 폴크스바겐은 총수 마음대로 하는 회사가 아니라고 했다. 독일은 ‘공동결정권제’라는 상법상의 제도가 있다. 노동자들은 대표를 선출해 기업 이사회에 참여했다. 폴크스바겐은 이 제도가 앞선 기업이었다. 2년 전 만난 독일 금속노조 관계자는 공동결정권제를 통해 “근로조건뿐만 아니라 자동차 개발과 경영 등에 노조가 참여한다”고 자랑했다. ‘황제 경영’이 아닌 경영진과 노조가 머리를 맞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모습. 그것은 노사 간의 대화가 쉽지 않은 한국 자동차 기업과는 너무 달랐다.
신화는 깨졌다. 지난 9월 폴크스바겐이 미국에서 디젤엔진 배출가스 저감장치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정부의 환경 규제를 피하고 소비자를 속였다고 자백한 것은 충격이었다. 8년 동안 폴크스바겐을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이끈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사임했다. 그는 ‘디젤게이트’가 터지기 나흘 전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전야제 행사에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객들이 좀더 완벽한 기술을 원할 때 항상 해답을 제시했다”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프리미엄의 민주화’를 얘기하던 하켄베르크 개발 담당 이사도 디젤게이트가 터진 뒤 정직 처분을 당했다. 하켄베르크 이사는 소프트웨어 조작이 시작된 때로 알려진 2008년 당시 개발 책임자였다. 저렴한 비용으로 성능과 환경을 모두 잡았다는 그의 말을 이제 믿을 수 있을까.
클린 디젤이라는 이미지도 허물어졌다. 폴크스바겐 외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환경 규제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진 상황이다. 환경단체들은 부쩍 늘어난 도시의 미세먼지 유발 원인으로 증가한 디젤차를 지목하고 있다. 디젤차에 대기오염 건강부담세를 매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실망은 독선적인 경영을 견제하리라 생각했던 노동자의 경영 참여도 이런 사기극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기업의 배신을 막을 수 있을까. 씁쓸하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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