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베르나보다 지드래곤

베이징 모터쇼에 등장한 한류 스타… 자동차 만드는 노동자도 나왔으면
등록 2016-05-04 21:17 수정 2020-05-03 04:28
‘2016 베이징 모터쇼’ 현대차 행사의 마지막은 베르나에 탄 지드래곤의 등장이었다. 현대차 제공

‘2016 베이징 모터쇼’ 현대차 행사의 마지막은 베르나에 탄 지드래곤의 등장이었다. 현대차 제공

올해 열린 중국 베이징 모터쇼에서 가장 인기 많은 전시관은 어디였을까. 중국인이 좋아한다는 아우디·벤츠?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지 업체 상하이차? (그렇다, 쌍용차를 인수했다가 손 털고 나간 그 회사다.)

4월25일 중국 국제관람센터에서 열린 ‘2016 베이징 모터쇼’를 찾았다. 중국에서 열리는 모터쇼는 처음인데, 중국 모터쇼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기피 모터쇼’로 꼽힌다. 왜냐, 보통 모터쇼라 하면 ‘새 차를 먼저 보니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국이 그리 만만한 곳인가. 대륙의 나라다. 자신의 다리가 얼마나 튼튼한지, 자동차라는 탈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역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이번 모터쇼도 모두 8개 전시장, 총면적 2만6천m² 크기였다. 그나마 올해는 1개 전시장이 줄었다. 기아차 부스가 있는 서1관에서 현대차 부스가 있는 동4관까지 가려면 10분은 걸어야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전시장 사이를 운행하는 셔틀차라도 있지만 베이징은 그냥 ‘대장정 모터쇼’다.

대장정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엄청난 인파였다. 기자나 업계 관계자만 들어오는 프레스데이 기간인데도 입장객이 엄청 많았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 안전요원들이 ‘멈추지 말고 걸으라’는 팻말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닌다. 인해전술의 나라다. 그렇게 인파를 헤쳐 북경현대차 언론발표회(프레스 콘퍼런스)에 갔더니 입이 떡 벌어졌다. 북경현대차 부스를 사람들이 이중 삼중으로 에워쌌다. ‘아니, 현대차 인기가 이리 좋았나?’ 외국 가면 느낀다는 한국 브랜드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이 느껴지려는 찰나, 뭔가 이상했다.

평소에 보던 기자 모습이 아니라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 줄 서 있는 것이다. 모터쇼는 보통 레이싱모델이 등장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많이 찾는 행사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모터쇼에서 레이싱모델을 퇴출했다. 선정적 옷차림이 문제가 되자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지난해 상하이 모터쇼 때 일자리를 잃은 레이싱모델들이 거지 차림으로 항의 시위를 하는 모습이 외신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인파를 헤치고 손을 내밀어 (그렇다, 이렇게 사람들을 밀고 자동차 부스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간신히 현대차 부스에 들어가자 현대차 관계자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오늘 지드래곤이 온다는 소식에 공항이 마비됐대요.” 한류의 힘은 진짜구나! 발표회 내내 부스는 시끌벅적했다. 팬들은 지드래곤 대신 새 차가 등장하면 한숨을 쉬었다. 마침내 베르나(현지명 ‘위에나’)를 타고 지드래곤이 등장하자 전시장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새 차가 이 정도 환호를 받으면 대박 나겠다!’ 생각할 때쯤 지드래곤은 기념사진만 찍고 바로 사라졌다. 노래도 안 부르고 가서 섭섭했지만 현대차로선 성공한 마케팅이었을지 모른다. 연예매체까지 몰려드는 등 현대차 부스엔 최대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화려한 쇼가 끝나자 신차 발표는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특히 발표회를 시작하며 중국과 한국의 내빈 소개를 10명 넘게 하는 건 지루했다. 역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의전인가.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다른 브랜드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기아차와 합작사인 중국 둥펑만 해도 행사 전에 직원들을 불러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어깨띠엔 ‘노동자는 위대하다’고 적혀 있었다.

현대차가 다음 모터쇼에선 한류 스타보다 새 차, 의전보다 직원을 대우하는 발표회를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차에 관심 없는 한류 팬보다 차를 사랑하는 팬이 더 많이 모여들 텐데 말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