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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게 뭐죠?

쏘나타와 K5가 다른 길을 가는 이유
등록 2016-05-29 09:10 수정 2020-05-03 04:28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엑셀을 기본으로 변형 모델을 제작하는 현대자동차 디자인실.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책세상)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엑셀을 기본으로 변형 모델을 제작하는 현대자동차 디자인실.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책세상)

4년 전 한 일본 자동차 브랜드에 다니는 한국인 디자이너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 기자들이 외국 자동차업계 사람을 만나면 보통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현대차는요?”

그날도 그랬다. 내가 물었는지 다른 이가 물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현대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이번 쏘나타(YF) 디자인은 대단히 혁신적이고, 몇 단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었는데 이다음 쏘나타는 어떤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 뒤 2년쯤 지나 현대차는 확 달라진 새 쏘나타(LF)를 내놨다. 이전 YF쏘나타가 울퉁불퉁하고 선이 굵었다면 LF쏘나타는 선이 단단해지고 얌전해졌다. 사실 YF쏘나타 디자인은 출시 때만 해도 너무 독특해 그 이전 모델(NF)을 계속 사겠다는 이들이 나올 만큼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쏘나타의 ‘형제 차’ 기아자동차 K5는 다른 길을 택했다. 지난해 나온 2세대 K5는 일반인 눈으로 볼 때 이전 1세대와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전보다 다듬은 정도라고 해야 하나.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이 물음에 대한 힌트가 담긴 책이 최근 출간됐다. (책세상 펴냄), 오랫동안 현대차에서 컬러디자이너로 일한 이문석씨가 시대에 따른 한국 자동차의 발달과 디자인을 묶어 책을 썼다. 책 서문엔 재미난 구절이 담겨 있다.

“얼마 있으면 새로 나올 신차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품평장. 신차 개발에 참여한 실무 디자이너와 중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드디어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사장님의 첫마디 ‘새로운 게 뭐죠?’ 항상 똑같은 말씀이다. 그러면 담당 디자이너가 나서서 기존 차량과 비교하면서 무엇을 바꾸었고, 어떻게 달라 보이게 했는지를 줄줄이 읊어댄다. 들어보면 자신이 했던 기존 디자인의 흠을 잡고 있는 것이다. (중략) 같이 일하던 한 외국인 디자이너는 이 모습이 참 이상하다고 말했다. 왜 매번 이전 것과 완전히 다르게 하느냐고. 이 질문에 필자는 확 다르게 해야 새 디자인 같아 보이고 좋지 않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외국인 디자이너의 생각은 이미 갖고 있는 기존의 자원을 활용해 개선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품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판단하는 태도였다.”

기아차는 2006년 독일 아우디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그 뒤 기아차의 디자인은 바뀌었다는 평을 받는다. 기아차의 모든 차가 일관된 디자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좋은 평가를 받은 슈라이어는 이후 현대차까지 총괄하는 디자인 수장이 됐다. 슈라이어가 온 뒤 자동차 품평회장의 모습이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K5의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이제는 “새로운 게 뭐죠?”라는 의례적인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현대차그룹은 외부에서 디자이너를 영입한 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한 게 분명하다. 지난해 말 럭셔리 차급인 벤틀리의 전 수석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한 데 이어, 최근엔 같은 벤틀리 출신 이상엽씨를 데려왔다.

그러나 이문석씨는 책에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철학이나 정체성이라는 과제를 두고 헤매는 것은 당연하다.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업의 수장은 외국인 디자이너에게서 그 해답을 얻으려 하고 있다.”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4강에 진출했다. 그 뒤 국내 지도자들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몇몇 지도자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다시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그가 떠난 뒤 한국 축구는? 디자이너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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