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버스의 세계에 들어섰다. 긴장되는 첫 출근날 아침 6시50분, 차를 놓칠라 일찌감치 서둘렀다. 내 앞에는 한 사람만 서 있었다. ‘이 정도면 자리가 있겠지’ 생각했지만 광역버스의 세계는 쉽사리 차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앞 정류장에서 만석이 된 것. 발을 동동 굴러도 서서 가기엔 서울은 너무나 멀어 보였다. 버스를 그냥 보냈다.
다음 버스도 만석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11월 새벽 공기에 땀이 삐질 났다. ‘이러다 지각하는 것 아닐까.’ 겁먹은 나는 줄을 벗어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희한하게 내 뒤의 사람도, 그 뒤의 사람도 줄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왜 다들 그냥 기다리지?’
결론적으로 내가 틀리고, ‘버스계의 선배들’이 옳았다. 아파트 단지를 나가며 잠깐 스마트폰 버스 앱을 보니 내가 포기했던, 다른 이는 기다렸던 버스는 자리가 남은 채 정거장에 왔다. 반대로 자가용은 월요일 아침, 서울 초입부터 꽉 막혔다. 회사 도착 시간은 오전 9시30분. 아마 버스에 탔으면 8시30분 전에는 도착했으리라.
그 뒤로 삶이 바뀌었다. 집을 나서기 전 버스 앱을 여는 건 습관이 됐다.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좌석은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버스 앱 없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버스를 타고 다녔을까?). 버스 앱에 맞춰 출퇴근 시간이 돌아갔다. 물론 정류장이 서울에 가까울수록 출근길에 앉아 갈 가능성은 줄어든다. 서울과 멀어질수록 버스 자리 잡기가 편한 것은 서울의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 못해 쫓겨난 서민의 마지막 보루일지 모른다.
버스에 타서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 옆에 앉을지가 이후 1시간을 좌우한다. 잽싸게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본 뒤 덩치가 작은 사람 곁에 앉는다. 1시간 내내 어깨나 팔꿈치 싸움을 하며 가면 ‘출근하다 죽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여성은 버스에서 인기 있는 존재다. 하지만 출근길 내 옆에 오리털이든 거위털이든 잔뜩 집어넣은 파카를 입은 남자가 앉는 건 머피의 법칙일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았으면 하는 생각을 출근길 버스에서 하게 된다.
그래도 버스의 세계에 희망은 있었다. 이층버스다. 2015년 10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층버스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일단 이층버스가 뜨면 자리 걱정 없이 줄을 선다. 총 72석에 좌석 간격도 여유 있다. 요즘 광역버스는 39~41석을 45석으로 늘린 통에 좌석 간격이 좁아졌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닌데 ‘이코노미증후군’에 걸릴 판이다. 고속도로에서 입석이 금지된 뒤 총 385대가 좌석을 늘렸다.
국내 버스는 그동안 현대와 대우의 과점 시장이었다. 기아는 고속버스용 고급버스만 생산한다. 이층버스는 볼보에서 만든 것을 수입한다. 이층버스는 높이 4m, 너비 2.5m, 길이 13m. 2층의 높이는 1.7m로 지나다니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좌석마다 USB 충전 포트가 있다. 스마트폰 배터리 걱정 안 해도 된다. 가끔은 기사분이 승객들 자라고 불을 끄는데, 그래도 따로 켤 수 있는 독서등이 있다.
이층버스의 가격(4억5천만원)은 일반 버스의 3배 정도다. 경기도는 2015년 이층버스 9대를 도입한 데 이어 2016년 10대를 더 도입해 김포와 남양주, 수원 노선에 투입한다고 했다. 정거장에서 더 많은 이층버스를 만나리란 희망. 서민에게 팍팍한 병신년에 그래도 희망 하나는 생기는 건가.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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