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회사에 도착한 이아무개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안요원들에게 잡혔다. 보안요원은 그에게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한다”고 했다. 이씨는 발버둥치다 서울의 어느 산 밑 사무실로 끌려갔다.
요원은 그에게 녹음 파일을 들려줬다. ‘강아지’와 ‘숫자’ 등이 섞인 욕설을 하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낯익은 목소리 안엔 그가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대통령을 향해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 담겨 있었다. 요원은 그가 쓴 뉴스 댓글을 담은 사진도 보여줬다. 이씨가 자동차 안에서 뉴스를 보다 긁적거린 것이었다. 한 달 전 한 지역정치 모임의 산악회를 따라 산에 간 시각과 경로도 요원은 알고 있었다. 요원은 “네가 뭘 했는지 다 알고 있으니, 어서 자백하라”고 으르렁댔다.
이씨는 그때에야 퍼뜩 자신의 자동차가 생각이 났다. 몇 달 전 시동을 걸자 운전석 중앙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내비게이션을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진행’ 단추를 누르자, 내비게이션은 어딘가로부터 파일을 다운받아 스스로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요원이 그에게 제시한 음성 파일은 운전석 위 마이크를 통해 녹음된 내용이었고, 뉴스 댓글 사진은 운전석 중앙에 설치된 화면이 캡처된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쓸 땐 말도 조심하고 글 쓰는 것도 피했는데 자동차까지 해킹당하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아뿔싸! 400GB(상상도 안 되는 크기다!)에 이르는 해킹팀 자료를 너무 오래 봤나보다. 서울 강변북로를 달리며 이런 상상까지 하니 말이다. 평온했던 매거진 기자의 삶은 피폐해졌다. 한국 경제를 망치는 암적인 존재(어디 있는 거니?)를 추적하다가 이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해커를 쫓는 신세가 됐다. 얼마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커(너는 어디 있는 거니?)가 해킹 프로그램을 파는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의 컴퓨터를 해킹해 내부 자료를 공개했다. 그 자료 안에서 한국 육군 ‘5163부대’(국가정보원)가 해킹 프로그램을 샀다는 영수증이 나왔고, 해킹팀과 국정원을 대리한 업체 ‘나나테크’가 해킹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매하고 이용했는지가 담긴 전자우편까지 공개됐다.
수많은 전자우편을 읽으니 겁이 난다. 내 스마트폰은 해킹당하지 않았을까. 귀찮다고 백신 프로그램 업데이트도 안 한 내 컴퓨터를 그들은 마음껏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해커들에게 자동차도 미래의 먹거리다. 자동차는 스마트폰만큼 운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아는 친구다. 혼자 타면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대화하고 표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미 자동차는 단순히 가고, 돌고, 서는 기계가 아니라 기록하고, 예측하고, 달리는 기계가 됐다. 외부와 정보를 주고받는 스마트카는 미래 자동차의 흐름이다. 예를 들어 BMW의 커넥티드 드라이브 서비스는 자동차와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망을 연결해 교통 상황과 뉴스 등의 정보를 주고받는다. 정보기술(IT) 업체인 애플(카플레이)과 구글(안드로이드 오토)도 자동차 운용 프로그램을 자동차에 설치하고 있다. 똑똑한 자율주행 자동차는 더 많은 정보를 외부로부터 받을 것이다.
스마트폰도 해킹하는 마당에 스마트카 해킹이 불가능할까? 안전하다고 믿는 것은 그동안 휴대전화 해킹은 안 했다고 말하는 국정원을 믿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올 초 미국 상원의원 에드워드 마키(민주당)는 벤츠·폴크스바겐 등 자동차 업체들을 조사해 무선 해킹에 관한 자료를 냈다. 미국 내 수백만 대의 차량이 무선 해킹 공격에 취약하지만 업체들은 이로 인해 그동안 얼마나 사고가 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소홀하다는 내용이었다. 최근엔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이 자동차 내 각종 기능을 제어하는 시스템을 해킹해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프 체로키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차 안에서 몰래 연애하는 것도 스마트카는 다 안다고 생각하시길~.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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