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이 지난 6월28일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에 대해 미국 소비자와 정부에 147억달러(약 17조원)를 배상하기로 했다. 독일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은 인증시험을 받을 때만 배기가스를 줄이는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켜 환경 규제를 피한 뒤, 실제 도로 주행 때는 이 소프트웨어를 끄는 수법으로 질소산화물을 허용 기준치보다 많이 배출시키다 2015년 들통난 바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로 나오는 질소산화물은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된다.
미국 법무부는 2016년 1월 배기가스 조작 책임을 물어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900억달러의 민사소송을 냈다. 이번 배상안은 민사소송에 대한 합의로, 미국의 역대 집단소송 합의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미국 정부 합의에 힘입어, 배기가스 저감 장치가 조작된 2천㏄급 폴크스바겐 차량을 구매한 미국 소비자 47만5천여 명은 1인당 5천달러(약 570만원)에서 1만달러까지 배상받는다. 지난해 배기가스 조작 사실이 알려진 뒤 차량을 판 소비자도 현재 소유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배상을 받는다. 합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별 소송도 가능하다니 부럽다. 147억달러에는 미국 환경 당국에 낼 27억달러, 무공해 자동차 연구·개발 지원비 20억달러도 포함됐다. 지나 매카시 미국 환경보호청장은 “앞으로 환경을 오염하는 폴크스바겐 차량은 미국 도로에서 주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기오염도 감소할 것이다”라며 합의안을 설명했다.
한국 소비자는 이 강력한 배상안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폴크스바겐은 미국 소비자 배상 합의가 발표된 뒤 “(합의가) 미국 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 차량 질소산화물 배출 규정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며 엔진 변종 또한 상당히 다르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 쪽은 한국 환경 규제(배기가스 기준 0.18g/km)가 미국(0.031g/km)과 사뭇 달라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간단히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느슨한 한국 기준은 맞출 수 있으니 소비자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환경부에 한 장짜리 결함시정계획서를 보냈다가 퇴짜당하기도 했다.
폴크스바겐의 배짱은 한국 시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폴크스바겐그룹의 2016년 국내 판매량(1~5월)은 아우디 1만246대, 폴크스바겐 1만629대였다. 기업이 소비자를 속였다는 치명적 잘못이 있음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판매량은 17~25%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른바 ‘디젤 스캔들’ 뒤 내건 할인과 무이자 할부 등에 소비자가 더 몰렸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 공기가 미국 캘리포니아 공기보다 나빠도 된다는 법은 없다. 디젤차 배기가스는 요즘 서울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의 원인 중 하나로도 지목된다. 환경 규제 기준은 달라도 한국 소비자 역시 ‘친환경 디젤’이라는 광고에 속은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팔린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차량은 12만5천여 대이다.
현대자동차가 국내 소비자에게 점수를 많이 까먹은 것은 내수용과 수출용 차가 다르다는 논란 때문이다. 현대차는 나라마다 다른 규제와 기후에 맞춰 에어백이나 강판을 장착한다고 항변했지만, 소비자는 차별당했다는 마음을 쉽게 풀지 않았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고속 주행하던 폴크스바겐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이완 기자 w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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