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대로 하면 과거 특별검사와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자명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유경근 대변인은 8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검이란 고위 공직자의 비리나 위법 혐의가 발견됐을 때,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변호사를 특검으로 선정해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과거 특검과 똑같은 결과란? 그렇다, 실패다. 그것도 처절한 실패다. 1999년 옷 로비 특검을 시작으로 2012년 내곡동 특검까지 우리나라에서 특검이 11차례 실시됐지만 한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끝날 때마다 ‘특검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구조적 한계가 근본 원인이다. 문제는 ‘세월호 특검’도 그 특징을 고스란히 답습하려 한다는 점이다.
<font size="3">특검 임명 실패하면 수사도 실패</font>첫째, 정치적 타협으로 수사가 시작된다. 국회가 특검에게 수사를 맡길지를 결정하기에 특검 임명 여부, 수사 범위 등 특검법 제정 자체가 정치적 힘겨루기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대북 비밀송금 특검(2003)은 수사 대상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오갔고, 스폰서 검사 특검(2010)은 수사 기간과 대상 때문에 40일이나 허비했다. 정치적 힘겨루기가 길어지면 수사 대상과 기한이 축소된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수사 대상을 ‘사람’이 아닌 ‘사건’으로 한정하기에 더욱 그렇다. 고구마 뿌리처럼 퍼져 있는 사건을 수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짧은 수사 기간은 부실 수사를 낳는다.
둘째, 짧은 시간에 특검을 임명해 적임자인지 검증할 수 없다. 신속하게 증거물과 신병을 확보하려면 특검 임명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 과거 특검법을 보면, 통상 3~7일에 특검 추천기관(대한변호사협회 또는 대법원장)이 적임자를 물색해 추천하면 대통령이 3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했다. 상설특검법은 추천 기간이 5일 이내다. 인사청문회는 물론 추천기관의 내부 추천 절차도 거칠 시간이 없다. 언론 등의 사회적 검증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검 임명에 실패하면 수사 결과는 뻔하다. 삼성 비자금 특검(2007~2008)이 그랬다. 조준웅 변호사가 이끈 특검팀은 1199개의 차명계좌와 324만 주의 차명주식 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재산 4조5373억원을 찾아냈지만 이는 비자금이 아니라고 결론 냈다.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삼성생명 주식을 불린 개인재산이라고 밝혔다. 그 결과 이건희 회장의 공식적인 재산이 4조원가량 늘었다. 이 회장에겐 ‘횡령’이 아닌 ‘조세포탈’ 혐의가 적용됐고, ‘이 회장이 삼성 특검의 최대 수혜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더군다나 이 회장이 비자금 사건에 대해 특별사면(2009년 12월31일)을 받은 지 보름 만에 조 변호사의 아들인 조아무개(40)씨가 삼성전자에 과장으로 입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법시험 준비와 어학연수 경력만으로 2010년 1월 삼성전자 중국법인 과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삼성전자 신입사원이 과장으로 진급하기까지는 통상 10년 안팎이 걸린다. 삼성은 “조씨의 채용은 특검과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특검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강화됐다.
반면 야당이 첫 특검추천권을 행사한 내곡동 특검(2012)은 ‘부실·눈치보기 수사’ 논란을 빚었던 검찰과는 달리 진실 규명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용지 매입 의혹 사건을 30일간 수사한 이광범 특검팀은 김인종 경호처장 등 전·현직 청와대 경호처 직원 3명을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앞서 8개월간 수사하고도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한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하지만 한계도 드러났다. 주요 참고인들의 출석 거부는 물론 청와대의 비협조로 핵심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게다가 수사 기간 연장 요청도 거부당했다. 특검의 수사 대상이 대통령 가족인 사건인데, 수사 기간 연장 승인권을 대통령이 갖도록 국회가 특검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font size="3">검찰 의존도 높아 수사 공정성 훼손될 수도</font>
셋째, 독립성과 능력을 갖춘 특검수사팀을 꾸리기가 어렵다. 특검뿐 아니라 수사팀도 최단기에 구성해야 해서다. 특별검사보(1~3명)나 특별수사관(10~20명) 등은 특검이 임명된 뒤에야 뽑을 수 있다. 그 기간도 10~20일로 짧다. 실무 능력을 갖춘 변호사가 휴업하고 특검팀에 합류해야 해서 인물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자격 흠결을 검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폰서 검사 특검에서 김종남 변호사를 특검보로 임명했지만, 검사 재직 시절 향응·접대 의혹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중도 사퇴했다. 한국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검(1999)에선 검찰의 공안부가 수사 대상인데도 ‘공안통’인 황교안 부장검사(현 법무장관)가 파견검사로, 공안검사 출신 허용진 변호사가 특별수사관으로 뽑혔다. 이들과 맞서다 김형태 특검보와 특별수사관 3명이 중도 사퇴해버렸다.
넷째, 특검팀이 이렇게 급조되다보니 기존 검찰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검마다 검찰 인력을 파견받는다. 그러면 검찰의 사건 수사 결과에 영향을 받아 수사의 공정성·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논란이 발생했다. 게다가 특검에선 파견검사만 진술조서를 작성할 권한이 있다. 변호사 자격이 있더라도 특검팀에서 검사의 직무를 대신 수행할 수 없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특검의 경우 파견검사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삼성 비자금 특검, 스폰서 검사 특검, 내곡동 특검, 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검에서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2004)의 경우 이우승 특검보가 파견검사들의 수사 방해에 항의하며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세월호 특검에 여야가 처음 적용하기로 합의한 ‘특별검사 임명에 관한 법률’(상설특검법)은 과거 특검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름만 상설특검법일 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상설특검’에서 한참 후퇴한 ‘제도특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설특검이란 임기가 정해진 특검이 상시적으로 활동하는 형태를 말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상설특검이 집권층의 권력 남용과 부패를 일상적으로 감시·처벌할 수 있는 제도다. 특히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막강한 권력기관인 검찰을 상설특검이 견제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자 시절 검찰 개혁과 관련한 공약으로 상설특검을 내놓은 이유다.
<font size="3">반복될 수밖에 없는 특검의 구조적 문제 </font>하지만 지난 6월 발효된 상설특검법에는 정작 상설특검 조항이 없다. 특검 수사 대상과 수사 개시 요건, 임명 절차만 미리 법으로 정해두었을 뿐이다. 국회가 여전히 개별 사건마다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과반 찬성’으로 특검을 의결해야 한다. 그 결정이 끝나야만 특검 임명 절차와 수사가 개시된다. 따라서 상설특검법의 첫 적용 대상인 세월호 특검에서도 과거 특검법에서 나타난 구조적 문제가 고스란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과거 특검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자명하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 자료: ‘특별감찰관 상설특별검사 도입 토론회’(2013년 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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