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현대사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성장에 대한 절박한 갈망이 ‘한강의 기적’도 이뤄냈다. 우리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것,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것 역시 성장에 대한 갈망에서 기인한다. 이렇듯 ‘성장주의’는 한국 사회뿐 아니라 개인의 삶까지 관통한다.
‘한국의 성장주의’(김현우 지음, 나름북스 펴냄)는 ‘나라는 잘살게 되었는데, 내 삶은 왜 점점 어려워지지?’라는,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삶도 나아질 것이라 믿고 더 좋은 대학과 직장, 더 비싼 아파트를 향해 달려왔지만 일상은 불안과 불만족의 연속이다. 저자는 이 익숙한 삶의 경로에 물음표를 던진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오히려 잃은 것이 더 많지 않나?
실제 빈부 격차,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노후 빈곤과 돌봄의 공백, 저출생, 지역소멸, 기후위기 역시 임계점에 도달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생산과 소비, 투자와 개발이라는 성장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장이 국가의 경제지표에 관한 말이기에 앞서, 생애 매 단계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상식이자 명령어라는 방증이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 기후위기는 성장이라는 기존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신호다. 이에 저자는 지금이 ‘탈성장’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며, ‘나우토피아’의 관점에서 공동체와 협동조합, 지역화폐를 매개로 버리는 대신 고치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돌보며, 지역에서 필요한 일을 스스로 조직할 것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지역소멸 지역에 개발사업이 아닌 계속 살아갈 조건을 만들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여름철 유급휴가를 확대하는 에너지 휴가제를 도입하며, 성장률을 높이는 정책 대신 돌봄과 교육, 주거와 노동의 재편 등까지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실천이 그렇듯,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더 돌볼 것인가. 그 변화의 비용과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시행착오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성장 이후의 삶을 막연히 상상만 할 것이 아니라 동학의 생명 인식, 함석헌의 씨알 사상, 장일순의 생명운동과 한살림, 김종철과 ‘녹색평론’ 등 한국 사회가 이미 가진 경험과 자원의 토대 위에서 성장 이후의 삶을 모색해보자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328쪽, 1만8천원.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오십, 삶은 여전히 당신 편이다
양창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9500원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로 자존감의 힘을 알린 저자가 오십 이후 인간관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젊은 날에는 나를 지키는 단단한 경계선이 먼저였다면, 오십 이후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흘려보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 나이 오십은 누구나 한계를 지닌 딱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향한 너그러움을 배우는 시기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경계에서 자란다
이길보라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8500원
코다(농인의 자녀)이자 엄마, 다큐멘터리 감독, 일본 사회의 외국인. 글쓴이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경계’에 선 글쓴이는 장애와 비장애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라는 겹겹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가 선 경계는 어느 한 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주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 가치가 밀어내는 이들을 예민하게 자각하고, 존엄한 삶의 영역을 확장하게 하는 자리다.

교실은 지옥이다
박상기 지음, 창비교육 펴냄, 1만4천원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하루를 학생과 교사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 책은 저마다의 사정이 얽힌 교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학생 건훈과 서희, 교사 박채영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독자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된다. 주요 아동청소년문학상을 휩쓴 현직 초등 교사인 글쓴이가 오늘날 학교의 민낯을 거침없이 파헤친다.

내가 불편하면, 불편한 것일까?
강남규 지음, 주니어태학 펴냄, 1만6800원
불편함은 번거롭거나 거슬리는 느낌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 때문에 누군가가 감수하는 불편함, 공동체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 부당한 현실을 마주할 때 느끼는 불편함도 있다. 이 책은 일상의 불편함을 14가지 유형으로 살피며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개인의 감정처럼 보였던 문제가 정치와 민주주의 문제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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