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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러 와주실 수 있나요”… 세상은 잠들어 있었다

유엔 특별보고관 알바네세가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열 사람의 기록 ‘세상이 잠들 때’
등록 2026-08-27 22:34 수정 2026-09-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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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 알바네세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이다. 유엔에 제출한 일련의 보고서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살해를 끈질기게 공론화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025년 7월 그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는 친이스라엘 세력의 집중 공격 대상이다.

‘세상이 잠들 때’(최보민 옮김, 어크로스 펴냄)는 알바네세 보고서의 에세이 판본이다. 법률가이자 법학자인 저자는 팔레스타인에서 국제법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전문가다운 태도로 살핀다. 그러나 잔혹한 반인륜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짙은 연민과 이를 못 본 체하거나 뒤집어 왜곡하는 국제사회 강자들을 향한 분노가 행간에 넘친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거나 잠을 자는 것 같아 보여요. (…) 저를 구하러 와주실 수 있나요? 너무 무서워요.” 2024년 1월 이스라엘 점령군의 포격으로 차 안의 일행이 모두 숨진 뒤 여섯 살 소녀 힌드 라잡이 적십자사 직원과 3시간 동안 통화한 녹음 기록의 일부다. 소녀는 12일이 지나 집중사격을 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소녀를 구하러 온 적십자사 구조대원들도 근처 구급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책은 라잡을 비롯해 열 사람의 이야기로 각 장을 이루고 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보복 전쟁이 시작된 뒤 하룻밤 새 여섯 명의 미성년자에게 사지 절단 수술을 했던 외과의사 가산 아부 시타, 물감을 사던 화방이 폭격으로 사라져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말락 마타르(이 책 표지 그림의 작가이기도 하다), 법의학 건축가, 트라우마 전문가, 홀로코스트 역사가, 그리고 자신의 배우자까지.

모두 저자의 멘토이자 지지자다. 유대인들한테서도 인간성과 양심의 빛줄기가 뿜어진다. 그래서 책이 보여주는 건 무채색의 암흑만이 아니다. 여기에 저자의 경험과 통찰력이 보태져 인류 전체와 연결된 모자이크 그림이 완성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는 체제는 바로 우리가 속해 있는 체제와 동일한 것이다. 이 체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아주 중요한 문제들을 거의 우리의 의견을 듣거나 우리를 대변하지 않고 우리 대신 결정한다. (…) 연대는 체제 전복적인 행위이고, 공감은 정신적·사회적 기능 장애로 간주된다. (…) 환경 문제에서부터 불안정한 노동자 문제, 젠더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당한 대의를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망가뜨린다.”

한껏 서정적인 책 제목은, 그러나 “괴물들이 생겨나는 것은 세상이 잠들었을 때”라는 뜻을 품고 있다. 328쪽, 2만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죽음의 책

조애나 에번스타인 엮음, 김승진 옮김, 오월의봄 펴냄, 5만4천원

기원전 6천 년부터 오늘날까지 ‘죽음’을 주제로 한 예술품 1천여 점을 모두 컬러로 담은 ‘죽음 백과사전’이다. 미술작품부터 책, 삽화, 판화, 조각, 사진, 엽서, 장서표, 범죄 현장 미니어처 등 죽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망라돼 있다. 사상가, 예술가 등 19명의 죽음에 관한 에세이도 함께 실렸다.

 


제노사이드 세계사

노먼 네이마크 지음, 김상기 옮김, 동연 펴냄, 2만9천원

3천 년 인류사 속 집단살해는 우발적 광기가 아니라 탐욕, 인종, 종교 등 경제적·정치적 이익에서 비롯됐다. 고대 구약성서와 중세 십자군의 집단살해부터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러시아·중국·캄보디아 등지에서 벌어진 공산주의 숙청을 비롯해 현재까지 자행되고 있는 23개 제노사이드의 실체를 파헤쳤다.

 


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

변정정희 지음, 현암사 펴냄, 1만8800원

노동운동이라면 전태일 열사로 대표되는 남성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1970년대에도 여성들은 임금인상과 생리휴가 등을 요구하며 해고와 폐업에 맞서 싸웠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았다. 운동(?) 좀 했던 할머니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일하고 신나게 싸우고 있었다.

 


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6800원

경남 김해에 현존하는 스마트 물류센터와 고대 가야의 고분군을 배경으로 잠과 감정을 잃어가는 노동자들과 결코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벨트를 소재로 내재화된 자본주의의 괴물성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만성화된 자기착취적 노동과 바람직한 삶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제3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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