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식민 청산,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

“식민지배 아래서는 ‘일본 신민'으로 전쟁에 동원되고, ‘일본인'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해방 후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보상에서 배제됐다.”
2026년 8월9일 일본 도쿄 분쿄구민회관에서 열린 ‘2026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도쿄 촛불행동' 행사에서 허미선 다이토분카대학 강사(정치학부)가 한 말이다.(한겨레 2026년 8월9일) 이 문장의 주어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군속으로 강제동원됐다가 전범 신분으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조선인들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81년이 지난 지금도 합사 취소를 외치며 고통을 겪고 있다.
‘열망의 법학: 식민주의와 결별하며’(이재승 지음, 앨피 펴냄)는 야스쿠니신사 강제합사 문제처럼 식민주의가 피식민지에 남긴 과거의 상흔을 현재진행형 과제로 끌어온다. 저자는 식민지배의 역사적 부정의가 오늘날 어떻게 연속되는지를 짚어내고, 그 사슬을 끊어낼 법철학적 이정표를 제시한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을 넘어 자연과 지구의 권리까지 사유를 확장하며 ‘참된' 법치주의의 열망을 담아냈다.
‘참된’ 법치란 무엇일까. 법치란 단어를 들으면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법조문으로만 다스리는 통치 방식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에게 법은 비판적 성찰의 도구이자 피해자가 권리를 되찾는 ‘회복의 무기'이다. 저자는 책 제목에 대해 “현재 인류의 삶에 작동하는 식민적 관계 방식을 뿌리 뽑고 보편적인 세계를 건설하려는 피식민지인들의 열망”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근대 국제법의 아버지’로 알려진 네덜란드 법철학자 후고 그로티우스를 역사적 기준으로 삼아, 식민주의가 법제도에 남긴 그늘을 추적했다. 식민 지배자들이 내세운 ‘문명화의 사명’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함정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또한 간토대학살, ‘위안부’ 문제, 재일조선인의 출입국 제한, 야스쿠니신사 강제합사, 스탈린 대숙청 시기 몽골 정치인들의 강제 실종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 사례를 폭넓게 살폈다.
머리말에서 “시간은 폭군이라서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지만, 때로는 사소한 개인조차 생의 울타리를 넘어 민족이나 인류의 역사적 시간 속으로 끌어당긴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일본 당국과 야스쿠니신사가 애도의 개별화를 거부한 채 죽음의 국가화를 수행하고, 결함투성이인 국제법이 패권국에 휘둘리며 액상화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 768쪽, 3만8천원.
공주경 기자 wnrud123@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인볼루션: 그래서 우리는 멈추기로 했다
공라오 컬렉티브 지음, 홍명교 옮김, 날 펴냄, 2만2천원
중국 청년들은 발전 없이 경쟁만 치열해지는 상태를 ‘인볼루션'(내권)이라 부르며 ‘탕핑'(드러눕기)을 시작했다. “더 열심히 하지 않은 네 탓”이라는 사회의 질책을 거부하는 탕핑은 분명 정치적 함의를 띤다. ‘쉬었음 청년' 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생각거리를 던진다.

주인의 손을 물어야 할지니: 흑백의 세계를 살며 생각한 것들
줄리아 리 지음, 강예은·문지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1만9천원
‘손을 물다'(Biting the hand)라는 영어 관용구는 억압자의 입장에선 ‘배은망덕'이지만, 피억압자의 입장에선 ‘저항'을 뜻한다. 저자는 인종주의가 자신의 삶에 남긴 상처를 되돌아보며 이 책을 완성했다. 치열한 자기 변신의 기록이자 인종주의를 향한 통렬한 고발장.

언어와 반언어
카를 크라우스 지음, 안병률 옮김, 북인더갭 펴냄, 1만7500원
발터 베냐민, 테오도어 아도르노,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당대 거장들의 존경을 받았던 카를 크라우스의 아포리즘과 에세이가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그는 1899년 잡지 ‘횃불’을 창간해 언론과 법, 예술의 위선을 파헤쳤다. 독설과 비판을 언어유희로 버무리는 솜씨가 뛰어났던 크라우스의 사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서울감자도: 패트릭 애버크롬비의 포테이토 플랜으로 읽는 서울
박혜리 외 29인 지음, 도미노프레스 펴냄, 4만8천원
도시건축 전문가 30명이 서울 25개 자치구를 행정구역이 아닌 사회적 관계와 지역의 특성으로 분석했다. 영국의 도시 계획가이자 건축가인 패트릭 애버크롬비의 ‘포테이토 플랜’에서 개념을 빌려왔다. 도시의 유기적 관계망을 감자를 닮은 덩어리로 시각화해 서울의 공간 구조를 표현했다.

▶서쪽 숲에 갔다
편혜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9천원
‘다크 판타지 거장’ 편혜영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 14년 만에 독자를 찾아왔다. 이 소설은 거대하고 빽빽한 숲을 둔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실종된 외지인과 비밀을 감춘 마을 사람들 사이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다. 작가는 일상을 틈입한 공포의 근원을 추적하며 인간의 모순된 일면을 드러내는 한편, 개인을 압박하는 시스템의 폭력까지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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