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단의 ‘미래파’ 논쟁은 20여 년이 지나도록 평행선을 그어왔으나, 거칠게 요약하면 ‘난해하다’ 대 ‘불가해하다’의 입장차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평행선 사이 어디에도 미래파 시가 쉽다고 보는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래파 시가 시 읽는 사람을 늘리는 데 기여했을 리도 없다.
서정홍은 이토록 미래지향적인 시단과 멀리 떨어져 20년 가까이 농사지으며 시작을 이어왔다. 그의 일곱 번째 시집 ‘오늘 밤에 별이 된다 해도’(상추쌈 펴냄)는 이번에도 쉽다. 그러나 이번 시들의 쉬움은 이전 시들의 그것과 또 다르다. 한층 깊어진 쉬움이다. 쉬움에도 절정이 있다는 듯.
쉬운 시는 ‘쉽게 씌어진 시’가 아니다. 윤동주가 자신의 시를 가리켜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던 것도 그가 시를 쉽게 써서가 아니다. 부끄러움은 식민지 피지배층이 겪는 형극의 삶을 자기 시에 견주며 아파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졸이고 졸여 얻은 결정체가 쉬운 시다.
서정홍한테서 윤동주가 비친다. 시집 제목은 ‘서시’를 연상시킨다. “해 질 무렵 산밭에 앉아/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뚜루루루루 지렁이 우는 소리 듣는다”(‘쓸쓸해서 고마운’)의 서정도 그렇다. 올해도 감자를 주문해준 이들에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봄 편지’)는 작정한 오마주다.
하지만 서정홍은 윤동주처럼 창백하지 않다. 식구와 이웃의 고달프면서도 다감한 일상, 서로 얽히고설킨 사연들을 별을 그리듯 시로 옮겼다. 옮기기만 해도 해학과 깨달음이 절로 따라왔다. “군소리 없이 마누라 섬기며 살다가/ 때가 되면 예, 하고 가면 되는 거지/ 무얼 그리 쓸데없는 걱정을 자꾸 해요”(‘천생연분 3’)
시집 맨 뒤에는 문학평론가의 해설 대신 ‘아흔넷, 밀양 할매가 딸과 읽은 농부의 시’라는 글이 실렸다. 배판세라는 노파가 ‘B품 인생’이라는 시를 귀로 듣고는 고갱이를 족집게처럼 짚어내며 무릎을 친다. “그렇지. 농꾼들이 참하고 실한 거 골라서 지 입에 못 넣지. 그거 B품 카는 거 말이다.” 쉬움의 절정에 이른 시와 황혼의 독자가 펼치는 진경이 시의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시인 이문재는 “눈물겹지만, 기어이 꿈을 부여잡게 하는 이 시편을, 시를 모르는 분들, 시가 왜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모든 분께, 가서, 품에 안겨드리고 싶다. (…) 이 시집이 누군가에게 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를 앙망한다”고 추천글을 썼다. 172쪽, 1만3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주의를 기울이는 법
롭 워커 지음, 이혜진 옮김, 마주 펴냄, 2만1천원
최근 미국에서 디지털 디톡스가 유행하고 있다. 저자도 자극을 찾는 대신, 이미 곁에 있는 세계를 더 깊이, 더 오래 경험하자고 말한다. 돌멩이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거나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관찰하고, 평소 흘려듣던 새소리를 알아차리는 것. 책에 담긴 131가지 방법은 눈앞의 세계를 감각하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조국과 민족에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다
올레 니모엔 지음, 한경희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 1만8천원
오늘날 젊은이들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저자는 ‘참전할 바에는 차라리 적국의 국민이 되겠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문제작이 되어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한 주장이다.

접경지대
제럴드 머네인 지음, 강아름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3천원
작가로서 은퇴를 고한 제럴드 머네인은 장편소설이자 자전적 작품인 이 책에서 화자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한다. 한 노작가가 여생을 보내기로 결정한 접경지대의 조그만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소망했던 일을 이루고자 한다. ▶그 일은 미처 돌보지 못했던 ‘이미지’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핀란드는 어떻게 핀토피아가 되었는가
대니 돌링·안니카 콜리오넨 지음, 김상빈 옮김, 푸른길 펴냄, 2만2천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핀란드가 어떻게 국민에게 투자하고, 교육과 복지의 혜택을 넓히며, 사회적 평등과 행복을 높여왔는지를 다양한 통계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살핀다. 더불어 핀란드의 성공을 다른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치와 가능성을 발견하려 한다. ▶핀란드의 역사는 곧 ‘원하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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