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다 세상만사 점수로 매겨지는 체제를 선택했나

자, 당신의 하루를 한번 곱씹어보자. 다음과 같지 않은지. 아침에 눈뜨자마자 소셜미디어의 팔로어 수와 ‘좋아요’를 확인한다. 출근길엔 내비게이션과 그 이용자가 골라준 가장 빠른 경로를 이용하고, 주행 뒤에는 점수를 매긴다. 점심시간엔 별점을 보고 식당을 고른다. 주말에 놀러 갈 여행지에서 이용할 숙소와 맛집 등도 이용자 평점을 보고 예약한다. 택시나 대리운전 이용 기준 역시 평점에 의존한다. 퇴근 뒤 서점에서 책을 고르거나 영화를 선택할 때도 평점을 따진다. 잠자리에 들 땐 중고거래 앱의 매너 온도와 신용점수를 올려주는 카드 실적을 확인한다.
‘서열 사회’(마리옹 푸르카드·키런 힐리 지음, 서영찬 옮김, 동아시아 펴냄)는 이렇게 평범한 하루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사회 변동, 즉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새로운 서열을 해부한다. 게임 티어(등급), 수능 등급과 학점, 외국어 점수, 대학 서열, 아파트 브랜드까지 일상에서 의존하는 서열화된 데이터는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어쩌다 서열 사회에 살게 됐을까. 그 시작은 1960년대 월드와이드웹(www)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들은 “이 서열 사회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발달에 따라 우리가 원했던 편리함의 부산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실제 회원 가입도, 리뷰 작성도, 위치 정보 제공도 우리 스스로 동의했다. 무료라서, 편리해서, 재미있어서 말이다.
어느새 이 정보들이 쌓여 별점 낮은 식당을 의심하게 하고, 팔로어 수로 사람의 영향력을 가늠하고, 게임 티어와 학점과 신용점수 사이에서 내 위치를 확인하게 됐다. 편리함의 대가로 지불한 것은 개인정보만이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 삶의 많은 부분을 “즉시 인증되고, 기록되고, 분류되고, 일종의 척도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 상태, 즉 디지털 서열 사회에 종속되도록 허락했다.
저자들은 이 서열 사회가 ‘공정’과 ‘객관’의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행동의 기록으로 매겨진 점수이니 불평할 수 없지 않느냐”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올바름’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용 인공지능(AI)의 공정성, 플랫폼 노동자의 평가와 계정 정치, 추천 알고리즘과 여론 형성, 생성형 AI 시대의 데이터 문제까지. 그래서 “서열 사회에서 삶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저자들의 마지막 문장이 더 깊이 와닿는다. 324쪽, 1만8천원.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사랑과 안정
안희제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만1천원
“결혼에 뒤엉킨 청년들의 삶, 욕망과 꿈, 그것의 배경이 되는 세계를 탐구”한 인류학 에세이다. 자신과 같은 또래인 1990년대생들을 인터뷰한 저자는 결혼이 어쩌다 그들에게 사랑과 안정을 위한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일방통행로가 됐는지 밝힌 뒤,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안정과 믿음의 풍요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

침묵
존 비게닛 지음, 김명남 옮김, 복복서가 펴냄, 1만5천원
원제목 ‘SILENCE’는 ‘침묵’과 함께 ‘고요’란 뜻도 품고 있다.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소리의 부재’쯤 될 텐데, 오늘날 과학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의 가청권 바깥에 더 드넓은 소리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자의 침묵은 특권이라면, 침묵을 강요당하는 자에겐 억압이다. 저자는 문학·음악·사회학·과학·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침묵을 탐구한다.

동네의 시간
최성용 지음, 에이도스 펴냄, 2만2천원
현대 도시인에게 동네는 삶의 중심 공간이라는 예전의 의미가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동네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열일곱 번의 이사 끝에 인천의 한 외곽 동네에서 14년을 산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동네의 과거와 현재를 자세히 살피고, 비인간을 비롯해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의 삶과 시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숲처럼 생각하기
벤 롤런스 지음, 김주희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2만원
생태 활동가이자 기후 대안학교 블랙마운틴스칼리지의 설립자인 저자가 두 딸에게 쓴 편지다. 기후위기에 공포를 느끼는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무해한 거짓말을 택하는 대신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고 연대하는 법을 터득하도록 한다. “‘숲처럼 생각하기’는 모든 생물종의 주체성과 안녕을 인정하고 증진하는 존재 방식이자 행동 방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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