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와 나치는 1933년 권력을 장악한 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독일을 지배했다. 그사이 독일은 인종주의 음모론을 근거처럼 포장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고, 유럽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토록 범죄적인 정권이 어떻게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유지될 수 있었는가?
독일 역사학자 괴츠 알리는 ‘히틀러의 복지국가: 약탈, 인종 학살, 공범들’(최준영 옮김, 생각의힘 펴냄)에서 예상보다 훨씬 불편한 대답을 내놓는다. 히틀러의 야만적 정치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인종주의 광신도나 자본가 등 소수의 횡포가 아니라, 수천만 명의 평범한 독일인이 그 범죄를 묵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역시나 유럽 사회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알리는 홀로코스트를 국가 재정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는 유대인 박해가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와 전쟁 재정이 맞물려 움직인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독일이 유대인 재산을 전시 국채로 전환한 방식에 주목한다. 당시 채권자인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와 절멸수용소에서 살해당했고, 독일의 재정 관료들은 그들이 절대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재산은 자연히 병사 급여, 군인 가족 지원금, 사회복지 재원으로 흘러들어 갔다. 유대인의 강제노동에서 나온 임금도 독일 여성과 아동을 위한 지원금과 재원이 됐다.
그러나 유대인 재산만으로는 천문학적인 전쟁 자금과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터였다. 나치는 유럽 전체를 독일 전쟁 경제의 금고 겸 세금 창고로 바꾸기 시작했다. 독일은 국가 간 금융 시스템인 ‘청산계정’(Clearing account)을 악용해 점령국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점령국의 중앙은행마저 독일 전시경제에 편입시켰다. 유럽은 곧 ‘약탈 경제’를 위한 하나의 재정 기반이나 다름없었다.
알리는 독일 국민 모두를 동일한 책임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학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한 범죄의 수혜자가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체제의 공범이 되는가. 타인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풍요를 누리면서도 침묵한 사람들은 어디까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80년 전 독일만이 아닌, 오늘날 우리 모두를 향한다. 464쪽, 2만8800원.
공주경 기자 wnrud123@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빅 테크가 대체 뭔데?
임지선 지음, 우리학교 펴냄, 1만6800원
온라인 플랫폼과 서비스 뒤에는 이른바 ‘빅 테크’라는 거대 기술 기업들이 있다. 저자는 빅 테크가 하는 일을 정확히 분석하고 저작권 침해, 개인정보 보안, 사이버폭력, 다크패턴 등 다양한 이슈와 논쟁까지 다각도로 다룬다. 최근 몇 년간 생성형 인공지능과 빅 테크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자의 취재력과 분석력이 빛을 발한다.

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열린책들 펴냄, 2만1800원
프랑스 혁명기, 공화군 병사 시몽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감옥에 끌려갔고 아버지는 총살당했다. 시몽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카리에르 총독의 집에 쳐들어가 그에게 총을 겨누지만, 샤를로트라는 여자가 나타나 완전히 다른 방식의 복수를 제안한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대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장편소설.

좌파 생활: 다른 방식으로 산다는 것
앤드루 펜다키스 지음, 유강은 옮김, 오월의봄 펴냄, 2만4천원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절감하며 좌파적 대안에 관심을 보이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자신의 삶과 연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저자는 오래된 문서철 속에 잠들어 있던 마르크스 사상을 꺼내 ‘지금 이 시대에도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품은 독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제안한다. 마르크스주의가 경험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치부 노트
정성은 지음, 안온북스 펴냄, 1만8800원
세상의 모든 치부가 그러하듯 저자는 연애에 실패하거나 사랑에 불안해한다. 꿈을 찾는 여정에 궁핍함을 피할 수 없고, 혐오로 가득한 세상은 숙제다. 저자는 수치심을 직면하고 사랑을 되짚는 용기, 나아가 그것들을 기어코 써내는 용기를 다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저자가 본격적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며 작가로서의 세계를 넓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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