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작가 이태준은 그해 소련 쪽이 짜놓은 일정에 따라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와 ‘소련기행’을 썼다. 이 여행기에서 이태준은 1920~1930년대 조선인 목격자로서 가진 모스크바에 대한 인상을 썼는데 ‘문맹 퇴치’ ‘잘 발전된 학교 제도’ ‘모스크바국립대학’ 등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장면은 여성이 교통을 정리하고, 버스와 전차를 운전하고, 물리 실험실에서 일하는 모습이었다. 시민이 무상으로 치료받는 풍경에도 감명받았다.
비슷한 시기 모스크바에서 연수받은 뒤 월남했던 북조선 출신 전직 교사 박민원의 기록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박민원은 소비에트 시민 대부분의 빈곤, 식품 부족, 일본인 전쟁 포로에 대한 학대 등에 경악했다. 이태준은 외교적으로 완곡하게만 ‘식량 부족’을 언급했을 뿐이다. ‘붉은 시대’(원영수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의 저자 박노자는 두 사람의 여행기 차이점은 ‘해석의 문제’였다며, 양쪽의 인식 양상은 심하게 이데올로기화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훗날 이태준은 자신이 했던 것과 같은 비슷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받고 1953년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로서 평양 문학계에서 숙청당한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전 지구적 생명력을 과소평가한 마르크스주의자들, 과거 모스크바 중심의 과장된 묘사는 시대적 한계를 담은 진보의 교조적이고 그른 예언으로 봐야 할까? 저자는 두 사람의 기록이 “한계는 명백해졌지만 성취 역시 분명하다”며 “‘현재 속의 미래’ 소비에트의 서사에 영감받은 붉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자신을 조직하고, 교육하고,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들의 꿈을 근대적 용어로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다.
광복절 80주년을 맞는 2025년은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다. 창당 이후 공산당은 항일 투쟁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으로 급진적 의제들을 내세웠다. ‘최저임금 보장’ ‘산업재해 보상’ ‘노동자의 경영 참여’ ‘토지개혁’ ‘동성애 탈범죄화’ ‘임신중지 합법화’ ‘유급 출산 휴가’ 등이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되살려낸 이 책은 조선의 좌파 운동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해석한다. 민족적·민주적·계급혁명적 성격을 동시에 지녔던 조선 좌파 운동의 고유한 특징도 살핀다. 448쪽, 2만7천원.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1만8천원
일제강점기 이 땅의 어린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생활했을까. 1938년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글짓기 대회 수상작에는 감동적이기까지 한 ‘동심’이 전경에 펼쳐지지만, 피식민지 어린이들을 일본 제국의 말단 일원으로 편입하려 했던 식민 통치 세력의 전략이 후경으로 드리워 있기도 하다. 당시 토박이 어린이들과 일본인 어린이들의 수필을 통해 시대의 풍경과 어둠을 함께 비춘다.

골목에서 배우는 인권
정석·정범구·이희수·김희교·강대중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1만7천원
‘인권’과 ‘감수성’이 본성처럼 서로 친화적인 건 인권이 추상적 가치 담론만으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공간에 빗대면 인권 감수성은 너른 광장보다는 실핏줄 같은 골목일 터이다. 인권연대가 2025년 1월 같은 제목으로 진행한 강좌 내용을 엮었다. ‘골목’이라는 프리즘에 국내외 인문지리와 역사를 투사해 다양한 인권 이야기를 펼친다.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불안이 되지 않게
애슐리 그래버·마리아 에번스 지음, 정윤희 옮김, 부키 펴냄, 1만8800원
장난감도 교육자원도 풍부한 시대인데 아이들의 정서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수십 년간 부모와 아이를 상담한 저자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정서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실전 지침을 소개한다. 사건·사고를 대할 땐 위협적으로 안전을 가르칠 게 아니라 ‘안심시키며 말하기’를 하는 게 좋고, 감정에 휘말려 엉엉 우는 아이 앞에선 함께 공감하며 무너지는 반응을 피하라는 등 세세한 가이드가 담겼다.

기억의 미래
정민환 지음, 심심 펴냄, 2만1천원
인간은 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발전시킨 생물종이 됐을까. 정민환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는 ‘추상적 개념을 사용한 자유로운 상상’이 그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기억’을 연구한 저자는 현대 뇌과학이 이룬 상상과 추상적 사고에 관한 주요 발견, 통찰을 되짚는다. 뇌신경학적으로 상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피고, 이 능력이 어떻게 혁신적 미래를 만드는지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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