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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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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를 ‘책임진다’는 딜레마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마주하는 쟁점을 사유하다
등록 2025-05-08 22:12 수정 2025-05-15 14:19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1975)이 동물권 운동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공리주의 이론인 ‘이익평등고려원칙’을 동물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과 동물의 권리를 철학적으로 대등하게 세운 기념비적 개념이다. 그러나 수나우라 테일러는 이 원칙의 근거로 싱어가 제시한 ‘쾌고감수능력’(Sentience,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동물종들에까지 차별적 위계를 매긴다고 비판한다.(‘짐을 끄는 짐승들’, 2020)

어쩌면 이런 논쟁 자체가 인간이 주체인 동물 윤리학의 숙명은 아닐까. 누가 보더라도 (인간 못지않게) 쾌락과 고통에 예민한 개와 고양이에 대한 윤리 또한 그래 보인다. 그들을 부르는 우리 언어생활이 ‘애완’에서 ‘반려’로 이행했다고 해서 절로 해소될 성싶지도 않다. ‘개와 고양이의 윤리학: 길들여진 동물을 위한 철학’(최훈 지음, 사월의책 펴냄)이 ‘딜레마’에 관한 깊은 성찰로 다가오는 배경이기도 할 터다.

지은이는 길들여진 동물에 대한 윤리를 사유와 실천으로 오래 천착해온 철학자다. 하지만 이미 언중의 입에 붙은 ‘반려동물’ 대신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반려자(배우자)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반려자에게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인간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의지적인 표현이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놓는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를 진정으로 책임지고 있는가, 진정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딜레마가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불쑥 머리를 내민다. 애완동물이나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은 옳은가 정도는 고전 축에 든다. “애완동물을 향한 애정이 강하면 자율성을 침해하여 의존성을 높이고 결국 취약한 존재가 되게 한다. 애완동물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방치하거나 야생으로 돌려보낸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더는 애완동물이 아니게 된다. 경계 동물로 머물거나, 취약했던 존재라서 그 전에 죽게 된다.”

지은이는 길들여진 동물의 도덕적 지위와 기본권, 의존성과 취약성, 애정과 지배, 선택적 교배, 시민권 부여 등 한사코 난감한 쟁점들만 불러낸다. 될수록 구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더러 정책적 대안도 제시한다. 그것이 유일한 정답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말의 함의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주인인 인간은 ‘길들인’ 것이고, 애완동물은 ‘길들여진’ 것이다.” 어린 왕자의 말마따나 길들인 것에는 책임이 있다. 408쪽, 2만5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최나현 등 지음, 오월의봄 펴냄, 2만1천원

광장에 늘 있었던 여성을 ‘응원봉 부대’로 획일화하는 시선을 거부하는 또 하나의 인터뷰집. ‘비수도권 딸’ 13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티케이(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이 부순다’는 구호로 대구에서부터 균열을 낸 김소결 등 지역 청년 여성이 ‘딸’이라는 가부장적 호명을 넘어서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빛났는지 기록했다.

 

 


두 강 사이의 땅 메소포타미아
모우디 알라시드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펴냄, 2만5천원

법학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던 저자는 영국 런던에서 고대 서적에 관한 강의를 듣던 중 손바닥 크기의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에 빠져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기 시작한다. 우르의 공주 궁전에서 발견된 유물 모음을 통해 ‘고대의 박물관’ 개념을 제안하고, 점토판에 남겨진 낙서 등을 통해 고대 바빌로니아 교육 풍경을 재현한다.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정보라 옮김, 현대문학 펴냄, 1만8800원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과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문. 과학소설 거장 스타니스와프 렘이 현실에 없는 책을 상상해 쓴 메타 서평 16편을 모은 ‘절대 진공’과 서문 6편을 모은 ‘상상된 위대함’이 완역돼 나왔다. ‘없는 것’에 기반한 경계 없는 상상과 난해한 지적 운동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정보라 작가가 번역하고, 정성들여 쓴 역자 후기로 안내한다.

 

 


베를린장벽길 산책
백기철 지음, 솔과학 펴냄, 2만7천원

베를린장벽길 160㎞를 전직 기자 백기철이 걸었다. 1961년 8월 동독 정부가 갑자기 서베를린 지역을 봉쇄하면서 생긴 장벽은 28년간 동·서 주민에게 분리의 고통을 새기다 1989년 장벽 붕괴와 함께 대부분 철거됐다. 장벽 설치 40주년 분단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재건된 숨은 장벽길을 찾아 분단의 시간을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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