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웹스터 대학생용 사전>은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를 대체할 성 중립 용어로 ‘웨이트론’(Waitron)을 내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용례”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어도 바뀔 거라며 페미니스트들의 급진적인 언어 개혁을 꼬집은 사설이었다. 언어커뮤니케이션학자 데버라 캐머런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한 꺼진 전구에 저절로 불이 들어오는 법은 없고 언어가 스스로 변화하길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다. 성 중립 호칭 같은 ‘언어’는 젠더 연구자들이 골머리를 싸매는 분야가 됐다. 예컨대 페미니즘 제2물결 이후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여성 앞에 붙이는 ‘미즈’라는 호칭은 성공적인 대체 용어로 자리잡는 듯했지만 이제 이혼한 여성, 전투적인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언어’를 비롯해 젠더 연구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결정적인 여러 용어를 해석하고 중요한 쟁점을 소개하는 논쟁적인 연구서가 나왔다. 여성학자 캐서린 스팀슨과 인류학자 길버트 허트가 편집한 <젠더 스터디>(후마니타스 펴냄)는 여성학·젠더 연구의 개척자와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혁신을 몰고 온 저명한 인문·사회과학자가 총출동한 풍성한 지적 기획이다. 주디스 버틀러, 로런 벌랜트, 웬디 브라운, 조앤 스콧 등이 공저자로 참여해 21세기 가장 첨예한 페미니즘 ‘개념들’을 21개 갈래로 나누어 살핀다. 신체들, 문화, 욕망, 민족성, 지구화, 인권, 정체성, 정의, 친족, 언어, 사랑, 신화, 자연, 포스트휴먼, 권력 등 중요한 개념을 망라했다.
“우리는 획일적인 ‘젠더’가 아니라 다양한 ‘젠더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 젠더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문화마다, 역사적 시기마다 다르지만, 젠더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젠더는 별개로 작동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회구조들 그리고 정체성의 원천들과 연결되어 있다.”(서론)
한국어판은 박미선 한신대 영미문화학과 교수와 윤조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감수했다. 두 사람을 포함한 11명의 공역자 또한 한국 최고의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기에 출간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다. 오랜 시간 공들여 번역한 만큼 페미니즘 연구 활동과 실천을 위한 길잡이로 삼기에 모자람이 없다. 760쪽. 빽빽하게 편집돼 내용이나 분량은 1천 쪽짜리 ‘벽돌책’에 버금간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마포주공아파트
박철수 지음, 마티 펴냄, 2만5천원
1964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최종 준공된 마포주공아파트는 한국 아파트단지의 원형이 됐다. 원래 임대용이었으나 1967년 대한주택공사가 분양을 결정했고, 그 뒤 아파트단지는 대부분 분양을 전제로 세워졌다. <한국주택 유전자>를 쓴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의 유작으로, 군부독재 정권의 국가 프로젝트에서 비롯한 아파트 이데올로기를 전방위적으로 다뤘다.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수전 니먼 지음, 홍기빈 옮김, 생각의힘 펴냄, 1만9천원
‘깨어 있는’(Stay woke, 스테이 워크) 시민이면 좌파(Left)인가? 혹은 좌파는 모두 깨어 있나? 계몽주의, 도덕철학, 형이상학, 정치를 탐구하는 철학자인 저자는 워크와 좌파를 구분한다. 좌파의 기본 가치인 보편주의, 정의, 진보에 대한 신념이 없다면 좌파가 아니라는 것. 오늘날 ‘좌파-되기’란 각종 분열과 고립의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철학서.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황의진 지음, 반비 펴냄, 1만8천원
젊은 여성들은 왜 자기 사진을 그토록 예쁘게, 또 열심히 찍는가? 인류학 연구자인 저자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해 당사자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사진 기술이 도입된 19세기 말부터 여성과 사진이 맺어온 역사적 관계를 탐색한다. 사진 촬영자, 평가자, 평가 대상을 오가며 ‘내 사진’을 소유하려 애쓰는 여성들의 분투 맥락을 촘촘히 풀이한다.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
권석하 지음, 안나푸르나 펴냄, 2만3천원
영국은 어떻게 군주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의원 다수가 차를 직접 운전하며 다니는 게 당연한 정치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82년부터 영국에서 40년 이상 살아온 재영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영국을 상징하는 왕실과 정치를 주제로 생생한 영국과 영국인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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