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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지만 정신병원 입원에 성공했습니다

정신의학계 뒤집은 ‘가짜 환자’ 실험의 반전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등록 2023-11-24 20:21 수정 2023-11-29 23:39

내 정신상태는 정상일까? 몸에 상처가 났거나 골절로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혈압과 혈당처럼 각종 검사로 수치를 측정할 수도 없다. 한 개인의 정신이 온전한지 이상이 있는지를 판가름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모호함 때문에 과거엔 여성이 남편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성인 사람에게 끌린다는 이유로, 체제와 다른 신념을 지녔다는 이유로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아 시설에 감금되기도 했다. 그리 먼 과거는 아니다.

수재나 캐헐런의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장호연 옮김, 북하우스 펴냄)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로젠한이 본인을 포함해 총 8명의 가짜 환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던 실험을 소재로 한다. 이 연구는 1973년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제목으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가짜 환자들은 입원 뒤 병원 안에서는 정상적으로 지냈지만 의료진은 가짜 환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이 연구는 정신의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80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3판(DSM-III)에서 경험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표준화된 진단 기준을 마련했다. 위기에 빠졌던 정신의학은 구조됐고, 이제 명실상부한 과학의 세계로 나아갔다. 또 로젠한의 연구는 미국 내 정신질환자의 탈시설·탈원화 흐름을 가속했고 많은 정신병원이 문을 닫았다.

저자는 5년간 취재를 통해 이 실험의 반전과 각종 이면을 두루 짚는다. 로젠한은 연구 일부를 과장·날조했고, 연구의 논지와 맞지 않는 내용은 논문에 싣지 않았다. 로젠한은 예상치 못했겠지만, 현재 미국 정신병원 병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환자는 지나치게 많아 정신보건 시스템이 무너지다시피 했다. 현재 5판까지 나온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도 그리 엄밀한 것은 아니다. 5판은 진단 기준을 대폭 넓힌 까닭에 과잉 진단과 의약품 과잉 사용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는다. 무엇보다 엄밀함을 추구하다 경직된 현대 정신의학은 환자 개개인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

저자가 책을 쓴 계기는 그가 현대판 ‘가짜 환자’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대 초반 저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환각, 우울증, 인지력 저하, 편집증 등의 증상을 보이며 일상생활이 무너졌다. 조현병을 진단받고 정신병동에 갈 뻔했지만, 자가면역 뇌염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오진 경험을 담은 <브레인 온 파이어>라는 책을 썼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펴냄, 2만2천원

저자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등의 책을 통해 질병의 사회적 책임, 의학 지식 생산의 불평등을 다뤘다. 이번엔 누구나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차별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짚는다. 저자의 연구팀이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면서 다른 차별 연구자들과 나눈 대화 등도 담았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 창비 펴냄, 1만7천원

기후정의와 젠더정의의 교차성을 고민해온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의 연구자, 활동가, 예술가, 농민이 각자 삶 속에서 기후·젠더 관련 의제를 풀어썼다. 독자가 ‘기후우울’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에코페미니스트 기후시민”이 되기를 권한다.

불편한 연금책

김태일 지음,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기획, 한겨레출판 펴냄, 2만3천원

행정·재정 전문가인 동시에 ‘함께하는시민행동’ 공동대표, ‘좋은예산센터’ 소장 등 시민운동가이기도 한 저자가 연금의 원리, 체계, 현황, 개혁 방안을 쉽게 풀어썼다. 지속가능성이 취약한 대한민국 연금 개혁안을 숙고한 결과물이다.

겨울을 지나가다

조해진 지음, 작가정신 펴냄, 1만4천원

췌장암으로 엄마를 떠내보낸 딸의 애도 이야기를 담은 중편소설. 소설은 동지, 대한, 우수 등 절기의 변화에 따라 진행된다. 작가는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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