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한국인 44만 명이 쓰는 언어 배워보니

사진 속 수어의 의미는? “수어, 배우기, 재밌어요, 해보세요.”
등록 2026-03-03 16:25 수정 2026-03-03 16:28
수어를 배우는 청년들이 2026년 2월12일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여러분께 말한다. “수어(선우하늘·왼쪽부터) 배우기(윤나경) 재밌어요(양승수), 해보세요(김서우).”

수어를 배우는 청년들이 2026년 2월12일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여러분께 말한다. “수어(선우하늘·왼쪽부터) 배우기(윤나경) 재밌어요(양승수), 해보세요(김서우).”


고요한 언어, 눈을 통한 소통, 상대와 자신에게 집중하는 표현 등 수화언어(수어)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이 있다.

한국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 규정한 한국수화언어법(수어법)이 공포·시행된 지 꼭 10년을 맞아 수어를 익히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이들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서울 거주자 또는 지역에 거주하는 농인과 농인 가족에게 수어를 가르치는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수어를 배우고 있다.

공공장소에서도 실컷 떠들 수 있다니

농인은 수어를 기반으로 문화적 소수 집단을 이룬 이들을 뜻한다. 청각장애인이란 표현과는 달리 수어를 제1언어로 쓰면서 농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갖는 이들이다. 영어로는 청각장애인을 뜻하는 deaf와 구별해 Deaf라 쓴다. 수어는 뿌리를 둔 언어마다 표현법이 달라 한국어에 기반을 둔 한국수어가 있고, 국제적 통용이 가능한 국제수어가 따로 있다.

수어통역사를 준비하는 선우하늘(32)씨는 1년7개월째 수어를 익히고 있다. 자신이 아플 때 의료진과 소통하면서 ‘농인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할까’란 궁금증에서 수어를 배우기 시작한 선우씨는 “농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고립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내가 수어를 쓴다기보다, 나 자신이 농인과 우리 사회를 연결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청인(청각 비장애인)으로 살아와 수어를 배울 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 등 소음을 힘겨워하는 선우씨는 “수어와 함께 눈빛·표정·몸짓 등의 비수지(손이 아닌 모든 몸의 표지) 표현을 하면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늘었다”고 자랑한다.

윤나경(26)씨는 4살과 6살 때 두 차례 중이염을 앓아 듣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고막 안에 튜브를 넣고 생활하며 수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끝에 실천에 나섰다. 상담 전공으로 대학원을 마친 윤씨는 농인들과 상담할 때 그들이 편한 언어로 대화하려고 수어 배우기에 열심이다.

말투에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윤씨는 “억양이나 높낮이로 감정을 표현하는 음성언어와 달리, 수어는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어렵다”며 “짜증 난다는 표현도 화가 난 건지 답답한 것인지 스스로 정확하게 새겨보며 표현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중국어 등 제2외국어까지 배우는 세태에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수어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어를 배우고 있는 양승수(22)씨는 수어가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양씨는 “어릴 때부터 제스처를 많이 쓰며 두서없이 말하는 버릇이 있어 부모님의 지적을 많이 받았다”며 “수어를 배워보니 자유로운 손짓과 풍부한 표정 덕분에 이해가 잘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미소 짓는다.

그는 또 “지하철이나 극장 등 공공장소에서 수어로 실컷 떠들 수 있고, 거절 의사를 돌려 말하는 경향이 있는 음성언어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상처를 덜 받는 농문화의 특성이 있다”고 수어의 매력을 꼽는다. 농업을 전공 중인 양씨는 “청인과 농인이 함께 어우러져 일하는 체험농장을 열어 동시통역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수어로 대화하면 얼굴도 기억할 수 있어

대학 편입 시험을 준비하며 영어 공부에 몰두하다 언어 속에 자리한 문화·관습·역사 등을 함께 탐구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김서우(27)씨는 수어를 배워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생활까지 알아보려 한다.

“상대방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과 표정을 다채롭게 지어야 하는 점이 어렵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는 김씨는 “상대의 표정에 집중하다보니 수어로 대화한 사람의 얼굴은 다 기억한다”고 신기해한다. 그는 “수어를 익힐수록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누려왔던 특권을 자각하게 된다”며 “청인과 농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깨치면서,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이웃에는 44만2034명(2024년 말 기준)의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먼 곳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것도 삶을 풍성하게 하지만, 당장 우리 곁의 농인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은 우리 안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속 깊은 청년들이 손과 표정, 몸짓을 모아 말한다. “수어 배우기 재밌어요, 해보세요.”

 

이재란 강사가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교육생들과 함께 경제 관련 예문을 수어로 해 보이고 있다.

이재란 강사가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교육생들과 함께 경제 관련 예문을 수어로 해 보이고 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