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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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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여, 인간에게 저항하라

지구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동물의 삶 <동물권력>
등록 2022-12-14 22:59 수정 2022-12-16 13:20

“사자가 글을 쓰기 전까지 역사의 영웅은 사냥꾼으로 남을 것”이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지금까지 동물은 인간 중심 역사에서 철저히 변방의 자리, 착취 대상에 머물러 있다. 식량, 노동력, 구경거리, 오락과 사냥, 애완이 주요 용도다. 인간의 효용은 동물의 고통이다. 반려동물로 불리는 몇몇 종도 주종관계가 엄연하다. 동물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천착해온 현직 기자가 쓴 <동물권력>(남종영 지음, 북트리거 펴냄)은 동물이 인간 지배의 결과물이라는 시각을 벗어나 동물의 삶을 지구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필자가 3년6개월간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을 토대로 엮었다.

오늘날 인간-동물 관계의 특징은 ‘가해 행위 은폐’와 ‘죄의식 소거’로 요약된다. 일상에서 공장식 동물농장의 참혹함은 가려지고 대다수 소비자는 별생각 없이 치킨과 삼겹살을 즐긴다. 인간과 동물 사이 경계는 엄정하고 일상은 평온하다. “비일상적 사건은 동물이 그 경계를 넘는 지점에서 발생하며,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은폐된 적대가 드러난다.”

동물이 인간의 종속물이 된 뒤로도 자유를 향해 위험을 무릅쓴 동물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긴 동물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거나 지정 구역을 벗어나면,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나 맹수가 탈출하면 한바탕 소동이 나고 대개는 사살로 끝난다. 한 생태역사학자는 이를 ‘(암묵적) 동의의 균열’로 봤다.

동물은 단순히 ‘고통’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면적인 삶을 살며, 고통과 슬픔뿐 아니라 기쁨의 감정에 몰입하고 미래를 계획하는가 하면 다른 종과 동맹하고 전쟁하며 세계를 구성하는 능동적 주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노동자가 언제든 파업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이 있듯이, 동물도 언제든 탈출하고 공격하고 파업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이 있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고 세계를 바꾸는 영향력이 곧 ‘동물권력’이다.

지은이는 풍부한 현장 취재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례에 자신의 시각을 녹여 넣었다. 2천 년 전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죽음의 쇼에 열광하는 관중을 위해 소비되다 결국 멸종한 사례, 2018년 미국 서부 해안에서 범고래가 갓 태어나 죽은 새끼를 수면 위로 계속 들어 올리며 1600㎞나 헤엄치다가 심연의 바다로 놓아준 ‘17일 동안의 장례식’ 등 흥미로운 역사 지식과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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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B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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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발자국 전문가가 기후위기, 생태환경, 지속가능성, 식량과 에너지, 생물종 다양성, 불평등, 글로벌 거버넌스 등 인류가 맞닥뜨린 도전을 진단하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위한 저항과 구체적 방법을 역설한다. 다양한 그래픽이 이해를 돕는다. ‘플래닛 B’(지구를 대신할 행성)는 ‘플랜 B’(비상 예비계획)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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