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의 일이다. (윤건차 지음, 박진우 외 옮김)의 출간을 앞두고 대만으로 휴가를 떠났다. 책의 출간을 앞두고 휴가를 떠난다는 게 그리 마음 편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출간 후 휴가를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이 출간되고 나면 언론사와 서점에 도서 홍보 자료를 보내야 하고 광고 홍보물도 만들어야 하며 보도를 위해 후속 취재를 하려는 기자와 소통도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출간기념회와 독자 행사 등 준비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
또한 책 한 권 작업을 다 마무리한 뒤 다음 책 작업을 시작하는 게 아니기에, 한 권의 책이 출간되는 시점에는 다음 책의 중·후반부 작업과 만나기 일쑤다. 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휴가란 애초에 없으며, 휴가 일정은 출간 일정의 틈을 비집고 알아서 잡아야 한다.
아무튼 윤건차 선생님은 자이니치(在日)로 한국어에 능하셨기 때문에 집필은 일본어로 하셨지만 마지막 한글 원고를 꼼꼼히 검토하셨다. 덕분에 내게도 시간이 좀 생겼고, 임신 중기를 넘어선 배우자와 함께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대만은 여러모로 내게 최적화된 곳이었다. 일본에서 느낀 세련됨도, 동남아에서 느낀 어떤 여유로움도 있었는데, 사람은 중국인이었다고 해야 할까? 거기에 식민지배와 독재정권에 얽힌 역사까지.
만족스러운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공항으로 달리던 택시 안이었다. 윤건차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원고 검토 의견과 출간 후 홍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기억한다. 전화를 끊고 묘한 쾌감이 들었다. 타이베이의 택시 안에서 교토에 있는 분과 서울의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는 짜릿함. 많은 분께는 이미 일상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순간 어떤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국경에 갇혀 살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랄까? 곧 태어날 아이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지구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 영국 런던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얼굴이 노랗고 머리가 검은’ 지구인이라는 벽이 느껴졌다. 하지만 타이베이-교토-서울 사이에서는 그런 수식이 필요 없었다. 지구인은 아직 먼 얘기고 ‘동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 정도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닌가 싶었다.
마침 진행하는 책이 자이니치의 삶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국가’가 없었다. 그간 국가‘들’ 사이에 내버려져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한 국가 차원이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의 모순을 한몸에 안고 살았다. 그렇기에 어떤 국가권력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보겠다 나서지 않았다. 역으로 이들의 문제가 해결되면 동아시아의 ‘국경’이 가져온 문제들 역시 해결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들은 내가 그린 미래인 ‘동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과거를 살아온 것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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