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18일 경북 칠곡군의 할매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새 단원으로 뽑힌 이선화 할머니(왼쪽 셋째)가 기존 단원들과 함께 ‘우리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를 열연하고 있다. 왼쪽부터 추유을, 홍순연, 이선화, 리더 박점순, 이필선, 장옥금, 김태희, 이옥자 할머니.
“수니와 칠공주 신입 단원은 5번 이선화님.” 심사위원장인 정우정 성인문해교실 선생이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로 소개된 이선화(77) 할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2025년 3월18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에서 할매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새 단원을 뽑는 공개 오디션이 열렸다. 2024년 10월, 서무석 할머니가 별세하며 생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대구와 칠곡에 거주하는, 평균연령 77.5살인 6명의 할머니가 지원해 열띤 경쟁을 펼쳤다.

‘수니와 칠공주’의 새 단원으로 뽑힌 이선화 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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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심사를 앞두고 이옥자(80) 할머니가 서무석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그리운 무석이 형님! 오늘 형님 자리를 채우려고 멤버를 뽑아요. 멋진 주먹 휘두르며 랩 때리던 형님 같은 열정적인 분을 뽑아야지요. 잘 보고 계시다가 싸인 주이소. 새로운 ‘수니와 칠공주’가 만들어지면 우리 모두 건강하게 즐겁게 잘 놀다가 형님한테 갈 테니, 그땐 하늘에서 랩 한번 때려보자구요.” 자리로 돌아온 이옥자 할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옥자 할머니가 2024년 10월 돌아가신 서무석 할머니를 기리며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다.
오디션은 자기소개, 받아쓰기, 애창곡 부르기, 막춤 대결 등 총 6개 관문으로 진행됐다. 1번 참가자 강영숙 할머니는 “건강은 자신 있어예”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대구 수성구에서 온 강정열(75) 할머니는 오디션에 합격하면 칠곡군으로 이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칠곡의 또 다른 라이벌 래퍼팀 ‘텃밭 왕언니’의 리더 성추자(82) 할머니도 참가했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며 연신 물을 마시던 성 할머니는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할게요”라며 이적 성공을 장담했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막춤의 대가’ 엄옥자 할머니와 인근 동네 이장 한상선 할머니도 “이장도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라며 도전장을 냈다.
5번 참가자인 이선화 할머니는 노래 대신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과 ‘초혼’을 막힘없이 외워 심사위원과 관람객들의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참가자들은 디제이 디오시의 댄스곡 ‘디오시와 춤을’에 맞춰 막춤을 추며 모든 경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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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와 칠공주’ 리더 박점순 할머니(가운데)가 공개 오디션으로 뽑힌 이선화 할머니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1시간 남짓한 뜨거운 경쟁 끝에 새 단원으로 뽑힌 이선화 할머니는 “너무 행복합니다. 60여 년 전 학교 다닐 때 외웠던 소월의 시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오늘 도전했어요”라고 합격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진달래꽃’도 랩으로 불러보면 좋겠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포부도 내비쳤다. 이 할머니는 ‘SHOW ME THE 할MONEY2’(쇼미더할머니2)라고 적힌 모자와 단체복을 받아 입고, 다른 단원들과 함께 ‘우리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를 즉석에서 공연하며 오디션의 대미를 장식했다. 리더 박점순(84) 할머니는 “새 단원이 우리와 협력해서 잘해준다면 최고지!”라며 그를 반겼다.

‘수니와 칠공주’ 새 단원을 뽑는 공개 오디션에서 ‘텃밭 왕언니’의 리더 성추자(82) 할머니가 받아쓰기하고 있다.
2023년 8월, 칠곡군 지천면 신4리 경로당에서 평균 나이 85살의 할머니들로 구성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창단되었다. 그룹 이름은 리더 박점순 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수니’와 일곱 명의 단원을 의미한다.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배운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시와 랩 가사로 풀어내며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어 ‘케이(K)할매’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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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막내 이선화 할머니의 합류로 다시 완전체가 된 ‘수니와 칠공주’.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며 건강하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할매 래퍼들의 힙한 모습을 기대해본다.

오디션에서 참가자들이 디제이 디오시의 댄스곡 ‘디오시와 춤을’에 맞춰 막춤 경연을 벌이고 있다.
칠곡=사진·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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