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다녀오니 학과가 없어지고, 전역한 여단도 사라졌다. 아르바이트했던 대형마트가 망하고, 연재했던 매체들도 차례로 문을 닫았다. 주호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파괴왕’으로 불리는 만화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때, 얼마 전 그가 청와대 앞에 다녀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이건 과학’이라며 그 사실을 즐겼다.
나 역시 그와 작업한 적 있다. 쌍용차, 유성기업,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 긴 싸움을 하는 ‘섬’들을 서로 잇는다는 취지로 시작된 ‘섬섬 프로젝트’. 만화가와 르포작가가 한 조를 이뤄 장기투쟁 사업장의 이야기를 전하는 를 작업하면서였다. 1권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2권 기획으로 이어졌고, 에 주호민 작가가 참여해 기륭전자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3권은? 애석하게도 진행되지 않았다. 장기투쟁 사업장이 없어져서일 거라 믿고 싶다.
한 장례식장에서 주호민 작가를 다시 만났다. 집에 오는 길에 차를 태워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아들 녀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여서 자연스레 ‘아기’가 주제가 됐고 이야기도 오갔다. 작가의 첫째아이 선재가 세상에 나올 때부터 돌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인데 책으로 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나는 괜히 ‘넷이서 쑥’은 안 하시냐며 싱거운 질문을 날렸다가 육아 고충 에피소드만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몇 달 후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사람들이 아내가 임신 중일 때가 좋은 때라고 한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내 믿게 됐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가 좋을 때라는 얘기도 곧 공감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백일의 기적’ 운운하며 백일만 버티라고 하기에 믿고 기다렸는데, 웬걸! 요새는 다들 돌 지나면 좀 나을 거라고 한다.
백일이 좀 지나 얼이 빠져 있을 즈음 을 집어들었다. 잠든 아기 옆에서 대기하며 틈틈이 읽었는데, 전부 내 얘기 같았다. 예정일을 가볍게 무시하고 불쑥 찾아온 아기 때문에 허둥대며 산부인과로 향하던 그날 밤부터, 난생처음 알게 된 고통의 모유 수유, 유모차며 카시트며 아기용품을 고심해서 고르고 또 고르던 일 등.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나도 젖이 나왔으면’ 하던 순간!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다. 한술 더 떠 인류사의 남성우월주의는 어쩌면 젖이 나오지 않아 열등감에 빠진 남자가 만든 거대한 음모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그렇게 을 보며 울고 웃고 하니 나갔던 얼이 되돌아왔다. 세상의 모든 고난이 나에게만 주어진 것 같았는데, 막상 다 그렇게 살고 있단 걸 확인하니 어떻게든 또 지내볼 힘이 났다. 공감의 힘이랄까? 이런저런 육아책을 들춰봤지만 아직까지 내게 이만큼 힘이 된 책은 없다. 오늘도 좌충우돌하며 멘붕에 빠져 있을 초보 엄마·아빠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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