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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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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낮에도 맘대로 수영할 수 있는 옷이야”

고얏국 태풍에 떨어진 고얏으로 죽을 끓여준 숙자, 구제품 수영복을 입고 미역을 감으러 갔는데…
등록 2015-07-24 16:49 수정 2020-05-03 04:28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우박이 쏟아지더니 익지도 않은 과일들을 땅에 쏟아놓았습니다. 자라는 곡식을 망쳐놓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파란 하늘에 날씨는 더워졌습니다. 숙자네 탐스럽던 고얏(자두)이 땅이 시퍼렇게 떨어졌습니다. 고얏나무가 허퉁해졌습니다. 너무 아까워서 주워 모았지만 이제 겨우 꽃매자리 면한 정도이니 소도 안 먹고 돼지를 줘도 안 먹습니다.
숙자는 고얏나무 밑에 화롯불을 놓고 댓 사발 드는 장뚜가리에다 시퍼런 고얏을 버글버글 끓입니다. 아직 맛이 안 들어서 버릴 수밖에 없는 고얏을 당원도 조금 넣고 소금 약간 넣고 푹 끓였습니다. 고얏나무 밑에 멍석을 깔고 숙자는 친구를 불러 모았습니다. 동생들은 데리고 오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친구들에게 고얏국을 한 국자씩 퍼주면서 어서 먹으라고 합니다. 친구들은 숙자 너 워낙 엉뚱한 짓을 잘하긴 하지만 세상에 꽃매자리 고얏국을 누가 먹나, 너나 많이 먹어라. 그럼 먹지 말고 가든지 말든지. 숙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고얏을 건져 맛있게 먹으며 국물도 훌훌 떠먹습니다. 이상할 거 같았지만 숙자가 하도 맛있게 먹으니 친구들도 먹어봅니다. 하나 먹어보니 맛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맛이 있습니다. 국물도 먹을 만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저로 국물을 훌훌 떠먹으면서 은근한 맛에 모두 다 정신없이 퍼먹습니다

신소윤

신소윤

친구 동생 하나가 언니~ 하며 누가 반기는 것처럼 여우질을 떨면서 찾아왔습니다. 동생은 내 평생에 고얏국은 처음 먹어본다고 이죽거리며 잘도 먹습니다. 숙자는 고얏국을 한참 먹고 땀이 흐르자 이상한 옷을 보여주며 수영하러 가자고 합니다. 제천 사는 큰언니가 구제품 수영복을 단짝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라고 다섯 벌이나 사주었답니다. 여태껏 수영복이란 말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친구들입니다.

그때까지는 그저 미역 감는다고 하며 그것도 처녀들은 밤에 목욕을 하거나 낮에는 옷을 입은 채 물에 풍덩 들어갔다 집에 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숙자는 수영복을 입으면 낮에도 맘 놓고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치마와 팬티가 함께 붙어 가슴을 가리는 것이, 입으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두 수영복을 입고 좋아들 하고 있는데 친구 동생이 자기도 수영복을 입고 싶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합니다. 꼬맹아, 너 집으로 가라, 해도 안 갑니다. 야, 꼬맹아~ 너는 가슴이 빈대같이 납작하니 팬티만 입고 해, 아니면 런닝구 입은 채로 하든지. 아무리 해도 친구 동생은 울면서 숙자 언니 같은 수영복을 달라고 계속계속 떼를 씁니다. 할 수 없이 숙자가 수영복을 벗어주었습니다. 숙자는 울면서 자기는 동생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합니다. 숙자는 팬티·런닝구만 입고 함께 물놀이를 합니다.

어릴 적부터 물에 풍덩거리며 놀다보니 누구나 강을 헤엄쳐 건널 수 있습니다. 강기슭 이쪽저쪽을 왔다갔다 하며 놉니다. 강 중간쯤 물속에 있는 바위까지 누가 빨리 헤엄쳐서 가나 내기를 합니다. 꼬맹이가 제일 먼저 가고 모두 비슷비슷하게 바위에 도착했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등치 큰 친구를 우리는 왕언니라고 불렀습니다. 헤엄을 제일 잘 치던 왕언니는 몸무게가 늘면서 물에 잘 뜨지 않습니다. 허우적거리며 애써 건너옵니다. 모두 빨리 오라고 응원을 합니다.

왕언니는 바위에 발이 닿자 푹 엎어졌습니다. 방심하고 있던 친구들이 밀리면서 바위 밑 깊은 물에 발이 닿도록 빠졌습니다. 원하지도 않는 물을 꿀꺽꿀꺽 마십니다. 올라왔다 다시 가라앉았다 물을 토해내며 겨우 허우적거리며 헤엄쳐 나옵니다. 다들 힘들어 정신없이 나와서 모를 밟고 섰습니다. 왕언니가 나오지 못하고 계속 바위 주위를 맴돌며 허우적거립니다. 아무도 다시 들어가 왕언니를 구해올 용기가 없습니다. 발을 동동 구릅니다. 언니 정신 차려, 힘내~ 빨리 이쪽으로 헤엄을 쳐 나와야지~ 모두들 소리쳐 불러보지만 큰일 났습니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보고 옷을 입은 채 뛰어들어 왕언니를 밀고 나왔습니다. 강가 모래밭에 엎어놓고 등을 두드립니다. 한참 등을 두드리고 난리를 치자 물을 울컥 토해놓습니다. 자기는 고얏씨도 그냥 먹는다고 자랑하더니 고얏씨가 있는 고얏국을 마구마구 토해놓습니다. 우리는 죽을 뻔한 왕언니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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