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을 귀담아들은 적이 있는가? 그의 젊음과 꿈, 희망과 좌절이 묻어나는 내밀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여기 하나의 작품이 있다. 어느 날 한 아들이 아버지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고, 아버지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둘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번 대화했다. 그리고 아들은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기억을 반죽해 인물들의 행동을 만들고,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으로 작품 곳곳을 채색했다. 숀 탠의 (사계절 펴냄)은 아버지와 아들이 빚어낸,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인간적인 깊은 참맛의 드라마이다.
숀 탠은 ‘잊혀진, 그리고 버려진 것’들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한때 중요한 의미가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관심이 사라져 이제는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독자들에게 환기한다. 그리고 기억의 한편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것들을 찾으면, 마치 일기장을 꺼내 읽는 것처럼 우리를 다시금 웃음짓게 만들고, 우리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고 감추듯 이야기한다.
2000년 과 이듬해에 발표한 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동화상을 휩쓴 그가 차기 작품으로 선택한 소재는 ‘아버지의 이민’이었다. 숀 탠의 아버지는 1960년 말레이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건축학을 공부하기 위해 이주했다. 다문화가정에서 성장한 숀 탠은 어려서부터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왔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막대한 양의 기록과 사진, 그림을 검토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숀 탠 특유의 기상천외하면서도 아름다운 스타일로 재구성했다. 작품은 단 한 글자의 대사도 없이 841컷의 그림으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사물과 배경이 수다스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이 작품을 통해 그림과 대화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은 한 이민자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강한 보편성이 있다. 언제나 독자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작가의 의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역시 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시도하는 존재이기에 주인공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앞날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 자신을 굳건하게 하기 위한 다짐, 도망치고 싶은 유혹, 그리고 누군가 필요한 절실함.
작품에서 아버지는 구두 뒤축으로 벽에 못을 박고 소중히 감싸온 가족사진을 걸어둔다. 그것이 험난한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준다. 우리 역시 여행자라면, 우리의 나침반은 무엇일까? 피상적인 의미가 아닌 단 1초도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소중한 무언가 말이다. 삶의 어느 길목에서 버려두고 온 것은 아닌지 조용히 뒤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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