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런데 통증이 무뎌졌기 때문일까. 우리는 그것 또한 큰 폭력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다. 직장 상사로서,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그리고 연인으로서, 존중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할 ‘관계’가 상대방이 원치 않는 무언가를 계속 억압적으로 강요해 점차 병들어가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다.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세미콜론 펴냄)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런 부조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독자가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주인공인 일본계 미국인 벤은 전형적인 ‘찌질한’ 남자의 표상이다. 인종적 열등감이 심한 그는 아시아 커뮤니티를 비하하고, 포르노그래피도 백인 여성만 등장하는 것을 본다. 위축된 그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일본인 여자친구 미코에게 구시렁거리며 가르치려 드는 것뿐이다. 심지어 미코가 넉 달 동안 인턴 생활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떠나는 날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소리를 한 보따리 늘어놓는다. “기분 좋게 좀 보내줘.” “너 하기 나름이야.”
벤에게서 벗어난 미코는 그제야 비로소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그녀는 뉴욕의 화려함을 즐기며 미래를 향해 당당히 나아간다. 벤이 백인 여성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자신도 다른 사람을 만난다. 벤이 그녀를 찾으러 뉴욕으로 가지만, 마침내 미코는 벤에게 이별을 고한다.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것일까? 미코는 아니라고 한다. ‘관계’의 그릇 크기만큼 쌓아둘 수 있을 뿐이다. 상처가 넘치는 순간 그릇은 깨진다. 하지만 벤에게 ‘변화’의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그릇을 뒤엎고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벤은 그러지 않았다. 그에게 미코라는 안식처는 너무 포근했기 때문에 그럴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결국 이야기는 벤이 비행기를 타고 혼자 돌아가면서 막을 내린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을 한번 돌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가 일방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한 것은 아닌지, 나 때문에 누군가 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만 신경 쓰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마든지 좋게 바꿀 수 있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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