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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도대체 왜?

이고르 투베리의 <우크라이나 이야기>
등록 2016-03-17 22:18 수정 2020-05-03 04:28

2006년 10월7일. 러시아 모스크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괴한들이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이어지는 네 발의 총성. 그리고 한 여성이 쓰러졌다. 반민주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를 비판하고, 체첸에서의 인권 유린을 고발해 ‘러시아의 양심’이라 불린 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안나의 죽음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아직 확실한 배후를 밝혀내진 못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암살이 아니었다. 자유와 진실을 ‘대놓고’ 짓밟은 행위였다. 서러움에 복받친 시민들은 사건 현장을 방문해 한 송이 꽃으로 그녀의 넋을 위로했다.
이탈리아의 대표 작가 이고르 투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러시아는 그의 조상들의 터전이었기에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 진실을 갈구하게 됐다. 그는 알고 싶었다. 무엇이 러시아를 그토록 폭력적이고, 진실을 은폐하며, 인권을 탄압하는 면모를 갖게 했는지. 그는 노트와 펜을 들고 긴 여정에 나섰다.

(투비북스 펴냄)와 (출간예정)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고르가 만난 사람들의 삶을 만화의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제1부 는 소련과 러시아에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국가인 우크라이나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고, 제2부 는 안나의 발자취를 좇아 그녀가 보았던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최대 곡창지대였으나 1922년 소련에 편입된 이후 말 그대로 ‘고난과 역경’이 끊이지 않았다. 스탈린은 산업화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밀을 수출하고자 농업집산화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 결과 자영농이 몰락하고 지나친 수탈이 이어져 1932년에는 참담한 기근이 발생한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고, 심지어 식인행위가 ‘풍습’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사건을 ‘기근을 통한 대량 학살’을 뜻하는 ‘홀로도모르’라 부른다. 그뿐만 아니라 1942~44년에는 나치의 점령을 받았고, 1986년에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도 일어났다. 딸과 사위가 북한의 핵 기술자로 파견됐다가 병에 걸려 돌아왔다는 마리아 이바노프나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시아 분리주의자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9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크림반도는 주민 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에 편입했다.

저자는 역사의 흐름에 따른 폭력의 연속성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리 정치체제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폭력의 본모습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마치 소련과 러시아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대응하지 않으면 매번 가면놀이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이고르의 메시지는 역사적 반성과 청산에 서툰 우리에게도 따끔한 충고로 다가온다.

이하규 해바라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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