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역사’라는 고상한 학문이 싸구려 콘텐츠의 해설자이자 정치권의 선동 도구로 전락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때문에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장점도 있지만, 온갖 매체에서 가볍게 던져주는 사학자의 결과물 한두 줄을 넙죽 받아먹고는 그것이 역사의 전부인 양 착각하면 곤란하다. 역사는 먹기 쉬운 달콤한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과육 덩어리가 아니다. 자료 수집, 문자 해독, 사료 비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혼합된 밀가루 반죽을 ‘역사관’이란 기계에 넣고 돌려야 비로소 탄생하는 고된 산물이다. 우리가 비록 이 생산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감수자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역사는 언제나 뒤가 구린 것들이 정당화를 위해 교묘하게 왜곡해 사용하기 때문이며, 또한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역사적 반성’이라는 인문학의 가장 웃물을 토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 중대한 역할을 망각하고 단순한 수동적인 역사 소비자로 전락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극심한 도덕적 타락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리쿤우의 〈중국인 이야기 1〉(아름드리미디어 펴냄)은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준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직후인 1950년부터 2000년대까지의 중국 현대사를 그려낸 자전적 만화다. 그중에서 제1부(2부, 3부는 국내 미발간)는 주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다루는데, 기존에 발표된 여러 증언보다 더 내밀하게 당시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을 통해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안방을 차지하면 따뜻한 온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광기에 찬 홍위병이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어른들이 정성스럽게 길러낸 괴물이었음을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야생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리쿤우의 그림은 우리를 당시 격동의 순간 한가운데로 인도한다.
리쿤우는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소박하다. 거창하게 역사관이나 정치적 입장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에 충실히 한다. 거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포착하고 담아내려 애쓴다.
역사는 인간의 발자취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본적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사라지고 역사의 주체가 국가나 정치, 경제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것들을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역사 속에서 매몰된 힘없는 존재의 운명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음 세상의 주인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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