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이 유행이라고 떠들썩한 요즈음에도 우리 집 식구들은 “캠핑? 그거 뭐 꼭 가야 하나? 매일 집에서 하는 것들인데!” 수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 열면 산이고, 가마솥에 나무 때서 닭백숙 끓이고, 돌판에 삼겹살 굽기가 준(準)일상이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손님 접대로 한 10여 년 구워대니 이제는 불만 때면 돌이 제 스스로 머금었던 기름을 슬며시 내비칠 정도다. 봄이 흐드러질 무렵 혼잡한 상춘 인파에 떠밀리지 않고 고요히 즐기는 춘흥(春興)과 더불어 캠핑 가지 않는 캠핑은 이곳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러나 반쪽 시골생활자인 10대 종손으로서 ‘접빈객 봉제사’(接賓客 奉祭祀)도 한도가 있는 법. 어쩌다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게다가 아내가 암일 수도 있다는 의사 소견은 부부의 여행 출발을 부추겼다. 막상 닥치니 생각이 많아졌다. 하루나 이틀이면 문제가 아니지만 일주일 넘는 해외여행은 만만찮은 사전준비와 사후처리 수고가 필수다. 수반되는 노고를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그래도 문만 잘 잠그면 대충 해결되는 아파트와 달리 시골생활에서 열흘 이상 집을 비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시기가 무성한 여름의 초입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혼사차 하루 서울 나들이가 못내 마지못한 농심(農心)에 비할 바는 아닌 시답잖은 반쪽 시골생활일지라도 돌아서는 순간부터 마음 쓸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성녀 테레사 수녀가 이르듯 삶이란 이류 호텔에서의 하룻밤일지라도 회전문을 돌아 나오면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아내와 나는 먹거리를 책임진 찬모와 일거리를 책임진 마당쇠로서 각자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항목이 길었다. 부재시 조석으로 집을 봐주기로 한 나의 ‘일 친구’ 윤현 사장의 노고를 줄이려니 더욱 길어졌다. 일거리로 치자면 여름철 주된 걱정거리인 풀 관리를 예초기와 잔디깎기 기계로 대충 정리하고 나니 역시 나머지 걱정거리의 핵심은 주로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배려였다. 그중에서도 성격이 깔끔해 사람과 대소변을 가리는 동동이가 제일 문제였고, 다음으로는 수십 개에 이르는 화분 종류와 두 곳의 온실 관리였다. 리스트를 작성하다보니 텃밭을 낙엽 등속으로 두껍게 덮어줘 물주기 수고를 덜도록 설계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고, 반(半)자급 생활을 위해 닭과 젖염소를 키우려던 야심(?)을 접은 것이 더더욱 다행이었다.
동동이의 자유로운 행동반경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느티나무 그늘 아래 5~6m 거리를 띄워 말뚝을 박고 양 말뚝을 로프로 단단히 연결하고 이 연결된 로프를 따라 개 목줄이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러면 개집에서 최대한 먼 지점의 풀밭에서 용변을 볼 수 있으리라는 내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이동 가능한 크기의 화분들은 뒤란 수돗가로 총집결시켜 걸 것은 걸고 내려놓을 것은 높이에 맞춰 배치해 물주기의 수고를 최대한 줄였다.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화분에 최적인 습도와 밝기를 이 장소가 제공해주는 것을 고려한 조처였다. 환기가 나쁘면 쉽사리 40℃ 근처까지 육박하는 반지하 온실 또한 두껍게 멀칭(덮기)을 하고 환기창을 모조리 열어두었으며, 친수성 식물들은 커다란 비닐봉투에 물을 담고 바늘구멍을 내놓아 일주일간 물 걱정을 덜었다.
반 고흐와 의 작가 장 지오노의 발자취를 따라간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그리고 호텔 접시닦이로 밑바닥 생활을 하며 작가수업을 한 조지 오웰의 자취가 밴 파리 뒷골목은 참으로 긴 여운이 남는 여정이었다.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동안 갈고닦은 막내의 그럭저럭 통하는 프랑스어와 부모에 대한 효도관광 오지랖이 초행인 여정을 즐겁고 수월케 했다. 그러나 ‘미슐랭 가이드’ 식당의 셰프 음식 솜씨는 후식을 예외로 친다면 아직 내 입맛에는 아내보다 한 수 아래였다.
돌아오니 두 가지 선물이 우리 부부를 맞았다. 담당 의사는 아내의 생일 선물로 암이 아닐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알려주었고, 2주간 집을 대신 봐준 윤현 사장은 그간의 ‘업무’를 일지 형식으로 선물했다. 제목은 ‘왕관 쓴 머슴일기’였다. 황제와 노예가 한 몸에 있다는 나의 발언을 패러디한 것이다. 고마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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