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밭 사이 1650㎡가량(약 500평)의 너른 땅에 잘게 쪼개진 섬유가 널려 있었다. 이 섬유는 헌 옷을 잘라낸 조각들이다. 섬유의 색은 모두 흰색 계열이다. 한겨레21 취재팀이 섬유가 널려 있는 사잇길을 걸어가봤는데, 축축한 섬유에서 강렬한 산성 물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락스 몇 통을 들이부어야 날 듯한 냄새다. 머리가 아플 정도다. “맡아지시죠? 이 옷들에 화학약품을 적셔 표백하는 거예요.” 현지 통역사가 귀띔했다.
2024년 10월25일 인도 파니파트시 동쪽 외곽에 있는 한 공장. 이 공장은 헌 옷을 재활용하기 위해 섬유를 표백하는 일을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할림(25)은 저수조에 담긴 표백 용수에 섬유를 담갔다 뺀 뒤 섬유를 펴서 땅에 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표백 용수는 저수조에 덮개 없이 보관돼 있었다. 32도 무더위 속에서 반팔 반바지 차림인 할림은 맨손과 맨발로 일하고 있었다. 맨손은 표백 용수에 쉽게 접촉됐다. 맨발인 건 표백된 섬유가 신발 자국으로 더럽혀질까 싶어서다. 보호 장구는 하나도 없었다. 이 공장에서 만난 다른 4명의 노동자도 모두 할림과 마찬가지 차림새였다.
‘헌 옷의 수도’인 파니파트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헌 옷을 재가공하는 산업이 발달했다. 헌 옷을 재가공하기 위해선 옷을 섬유로 만드는 작업과 섬유의 색깔을 빼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공장에서 하는 표백 공정이 바로 섬유의 색깔을 빼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실로 만든 뒤 다른 색으로 염색할 수 있다. 표백에는 강력한 독성 표백제와 계면활성제, 각종 중금속으로 이뤄진 화학물질 혼합수가 쓰인다.
할림도, 이 공장의 공장주도 이런 화학물질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보호 장구를 쓰지 않고, 정기적으로 약을 먹으며 버틴다. 할림과 같은 노동자들은 주마다 또는 달마다 정기적으로 공장에서 2㎞가량 떨어진 동네 병원에 약을 처방받으러 간다. 공장주가 소개해 호흡기·폐 질환 관련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표백 용수의 독성 가스가 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약을 먹어요. 아직 젊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는 없어요.” 할림이 말했다.
이곳에서 1400㎞가량 떨어진 벵골 지방 출신인 할림은 4년 전 가족과 함께 파니파트의 표백 공장으로 이주했다. “고향에서는 가난하고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표백 공장 안에 있는 66㎥(20평) 안팎의 작은 오두막에서 지낸다. 공장주가 제공한 공간이다.
파니파트로 이주해 일거리와 지낼 장소를 얻었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할림이 독성 물질 옷더미에서 한 달에 얻는 수입은 1만5천루피(약 25만원) 정도다. 인도의 평균 임금이 월 3만2천루피(2024, 샐러리 익스플로러)인 것을 고려하면, 평균 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마저 약값에 일부가 든다. 게다가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다. 이 오두막에서는 배우자 쿠슈부(20), 6살 파라빈, 5살 라이언, 3살 하마라, 생후 9개월 된 매핵 등 네 아이와 함께 산다. 곧 다섯째 아이도 태어난다. 부모도 모시고 있다. 이렇게 3대, 여덟 식구가 모여 표백 공장 속 오두막에서 지내는 것이다.
할림의 표백 작업은 노동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작업 종류에 따라 휴일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의류의 표백과 물량 이송 일정에 따라 노동 시간이 맞춰지는 편이다. 그의 일은 재활용 공장에서 잘게 잘린 헌 옷들이 이 표백 공장으로 옮겨와야 시작된다. 할림은 이 옷을 6개로 나뉜 커다란 저수조에 순서대로 담근다. 한 저수조당 2~5시간 간격으로 헌 옷을 물에 넣었다가 뺀다. 저수조들에는 각각 다른 표백 용수가 들어 있다. 할림을 비롯한 직원들은 나무막대로 넣은 섬유를 돌려 표백 용수가 잘 스며들도록 한다. 이렇게 헌 옷을 표백 용수에 순서대로 담그는 작업은 3일 정도 걸리고, 표백된 옷을 말리는 작업도 추가로 3일 정도 걸린다. 말린 옷들은 릭샤에 실어 이 섬유를 원사로 만드는 공장으로 보낸다.
파니파트에서 재활용 공정을 거치는 한국 옷이 많다는 사실은 한겨레21 취재팀의 추적기로도 입증된다. 취재팀은 2024년 7~8월 헌 옷 153벌에 스마트태그나 지피에스(GPS) 추적기를 달아 국내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4개월이 지난 결과, 5벌이 인도 파니파트로 향했다. 현지에서 확인한 결과 옷들은 파니파트에서 분류되고 잘린 뒤 표백되는 재활용 공정을 거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할림이 표백하고 말린 옷에는 한국의 헌 옷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공장주 또한 “미국, 방글라데시, 한국에서 옷들이 온다”며 한국에서 온 헌 옷들을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합성섬유로 된 옷더미였다. 조각난 옷들은 표백된 뒤 말라 있었다.
남아시아 인권단체 아리사와 네덜란드 섬유 수거기관 심퍼니가 펴낸 ‘섬유 재활용의 비밀’ 보고서(2020) 또한 파니파트에서 헌 옷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표백 노동자의 건강 악화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 화학물질 안전 관련 조처가 마련돼 있지 않으며, 작업자는 화학물질 취급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안전한 폐수 처리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폐수는 개방된 배수구로 배출된다. 때로는 표백 과정에서 유독 가스가 방출돼 근로자들이 작업 구역 근처의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저임금과 개인 보호장비 부족은 방문한 모든 공장에서 발견됐다”고 지적한다.
표백한 섬유를 재활용해 원사로 뽑는 공장의 노동 환경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겨레21 취재팀은 2024년 10월24일 파니파트에 있는 실과 커튼 제조 공장을 방문했다. 실과 커튼의 재료는 표백한 뒤 가공한 헌 옷이다. 노동자들은 한올 한올 실을 뽑아내는 기계 옆에 서서 실을 손으로 처리하거나 기계를 작동하고 있었다. 창문이 없는 공장에 육안으로도 실먼지가 날아다니는 게 보였고, 미세입자가 된 섬유 조각들은 기계 주변에 먼지처럼 쌓이고 있었다. 오래된 영상으로 남아 있는 한국의 1960~1970년대 방직공장 노동 현장 풍경을 연상시켰다. 이곳에서도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미성년자들이 헌 옷 재활용 노동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섬유 재활용의 비밀’ 보고서는 “ 옷의 재활용에 14살에서 18살 사이의 미성년자 노동자들도 포함돼 있다”고 지적한다. 인권단체 ‘휴마나 피플 투 피플 인디아’(Humana People To People India)가 2018년 5~18살 어린이 41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440명의 아이가 헌 옷을 분류하고 재활용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하는 아동의 59.3%는 노동에 대한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또한 일하는 미성년자 중 많은 비율(44%)이 5~10살의 아주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인권 단체는 공장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후 정부 또한 아동노동을 단속하며 최근 2~3년 새 `학교 밖 아동 노동자'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파니파트 시민들에게 취재팀이 현재 상황을 문의한 결과, 여전히 소수는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를 도와 재활용 관련 노동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파니파트의 헌 옷 재활용은 이렇게 어린이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건강을 갉아먹으며 굴러간다. 극심한 빈곤과 실업 때문에 사람들은 파니파트의 헌 옷 재활용 관련 일자리의 위험성을 알고도 받아들인다. 표백 공장의 또 다른 오두막에서 아들과 함께 살며 일하는 여성 노동자 소마티(58) 또한 그랬다. 우타르프라데시(파니파트에서 400㎞ 떨어진 지역) 출신인 그는 14년간 표백 공장에서 일했다. “원래는 우타르프라데시에서 일하던 일용직 농부였어요. 하지만 농사일은 늘 일정하지 않았어요. 수확을 1년 기다려야 했어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없었고 실업자가 됐어요. 그래서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와 일하는 거죠.”
극심한 빈곤층이고, 힌디어를 읽지 못하고, 여성인 그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적었다. 그나마 이 공장의 공장주가 자신을 고용해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이 일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산(酸, acid)을 사용하는 거기 때문에 폐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매일 약을 먹죠. 매일 약을 먹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소마티를 인터뷰하고 돌아서자, 표백 노동자 할림의 세 살배기 딸 하마라가 표백 공장 옷더미 위에서 당근을 들고 서 있었다. 옷들은 표백 용수에 담갔던 것이다. 옷더미를 미끄럼틀 타듯이 내려온 하마라는 표백 공장 인근 밭에서 가져왔다며 아빠에게 당근을 자랑했다. 얼마 뒤 하마라는 그 당근을 입에 넣었다. 당근을 오물거리는 하마라 뒤로 이어진 공장 주변 밭으로도 표백 용수가 이리저리 흘러넘쳐 있었다.
파니파트(인도)=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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