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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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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수행 국가 한국의 정치 메커니즘과 국가폭력 분석한 김동춘의 <전쟁정치>
이 책이 2013년 단 한 권의 책으로 꼽힌 이유
등록 2014-01-04 17:13 수정 2020-05-03 04:27

“전쟁은 아직 안 끝났어.”
영화 의 고문 형사 차동영은 변호사 송우석을 발로 걷어차며 말한다. 그의 말처럼 한국 사회는 지금도 전쟁 중인지 모른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농민·빈민들의 농성장에서 공권력은 내전 중의 적을 섬멸하듯 폭력을 행사한다. 자비는 없다. 한국은 여전히 전쟁국가인 까닭이다.

한국처럼 국가폭력 빈번한 나라 있나

국가폭력은 오늘도 ‘전쟁정치’의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하고 있던 세입자들을 상대로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에 나서자 망루가 화염에 뒤덮이고 있다.김명진

국가폭력은 오늘도 ‘전쟁정치’의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하고 있던 세입자들을 상대로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에 나서자 망루가 화염에 뒤덮이고 있다.김명진

‘국가 내부의 노동·빈민 세력, 비판적 지식인까지도 내전 중의 절대적 적(absolute enemy)처럼 취급되고, 이들을 제압하여 무력화하는 일이 국가의 일차적 활동 목표’인 한국을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전쟁정치’의 나라라고 말한다. 김동춘의 (길 펴냄)는 이러한 ‘한국 정치의 메커니즘과 국가폭력’을 아프게 분석한 책이다.

김 교수는 “전쟁정치는 이데올로기 차원(반공주의·인종주의 등), 법적 차원(각종 비상사태법·계엄법·국가보안법 등의 제정과 집행), 공권력의 행사 방식(경찰·군대의 동원) 등 다차원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국가권력의 행사는 광범위한 폭력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 전후 수많은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지배계급은 그 이후에도 국가폭력을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로 삼았다. 경찰들의 4·19 시위대 발포, 공수부대의 광주 학살, 군경과 중정(안기부)의 일상적인 불법 구금과 만연한 고문, 재독·재일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 최종길·장준하 등 인사들의 의문사 등 물리적 폭력과 더불어, 조봉암 사형, 조용수 사형, 인혁당(재건위) 사형, 유신과 긴급조치(긴조) 제정 등 법치를 위장한 사법 살인과 폭력까지. 국가의 패악질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저자는 묻는다. 근대국가에서 한국처럼 국가폭력이 빈번하고 만연된 사회가 있었을까.

물론 국가폭력은 지식인들에게만 가혹하지 않았다. 납북어부 조작간첩 사건, 막걸리 반공법 사건, 삼청교육대 사건, 강제징집 녹화사업, 북파공작원 사건 등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그렇다면 민주화된 지금은 다를까. 참여정부의 발전노조 파업 강경 진압과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행정대집행, MB 정부의 용산 참사, 쌍용차 폭력 진압, 민간인 사찰과 주폭 논란, 박근혜 정부의 밀양 행정대집행과 민주노총 침탈까지 국가폭력은 오늘도 차고 넘친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된 이유가 정전과 분단이라는 계속되는 전쟁, 그리고 사실상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있다”고 본다. 결국 전쟁기 국가폭력이 주로 좌우익 갈등보다는 친일 경력을 가진 한국의 지배계급이 항일세력에게 느낀 위기의식의 반영이라면, 전쟁 이후 국가폭력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 지배계급이 양심적 민주화 세력을 절멸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었던 셈이다.

본 사람 중 10%만이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의가 이처럼 타락하게 된 것은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의 국가폭력 사건도 사법적으로 단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통탄하는 김 교수의 책은, 불의와 불법적 폭력에 대한 분노와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으로 뜨겁다. 을 본 사람들 가운데 반이라도, 아니 10분의 1이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이 반동의 시대를 끝장내고 ‘국민이 곧 국가인 시대’, 저자가 대안으로 삼은 ‘자유법치국가와 사회국가의 수립’이 앞당겨질 터다. 2013년 단 한 권의 책으로 이 책을 꼽는 건 그래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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