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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학에 평생을 바친 노학자는 오랜 연구 끝에 이런 결론을 내놓았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장이야말로 발전의 일차적 목표이자 주요한 수단이라고. 후생경제학자 아마티아 센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책 (갈라파고스 펴냄)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발전은 부자유를 제거함으로써 이뤄진다. …다양한 사회제도들은 개인적 자유의 확장과 유지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발전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자본의 축적, 시장의 개방, 혹은 효율적인 경제계획의 수립 등 단순한 ‘공식’으로 쉽게 번역되는 발전관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가 세밀하게 펼친 사례 몇 가지를 들여다보면 좀더 이해가 쉬워진다. 이를테면 노예제도가 그렇다. 노예의 수입은 자유로운 농업노동자들에 비해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기대 수명 또한 미국과 유럽의 도시 산업노동자들보다 훨씬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도망치려 했고, 노예해방 뒤 많은 농장주가 높은 임금을 주고 강제 집단노동을 재건하려 했지만 아무도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자유로 인한 발전은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켜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센은 같은 맥락으로, 경제 발전을 위해 정치적 자유나 사회적 권리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한국도 그 예 중 하나다. 1970년대 한국, 리콴유 재임 당시의 싱가포르 등은 빠른 경제성장을 보인 사례들이다. 하지만 센의 입장은 “권위주의적 정부와 정치적·시민적 자유의 억압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실제로 유익하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유와 민주주의를 배반하는 행위들이 때때로 국가경제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는다고 주장한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사태를 예로 든다. “민주주의의 재난 방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예다. “도전받지 않은 통치권력은 쉽게 무책임과 불투명성에 빠져들며, 이것은 종종 정부와 금융계의 거물들 사이의 강력한 유착관계 때문에 더 강화되곤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위기가 불평등하게 분담됐을 때, 그러니까 취약계층만 심각한 궁핍에 몰렸을 때 발전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주지 않아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건강해 보였던 경제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던 위기 상태가 표면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사악하게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비민주적 정치라는 주장이다. 반면 사회정의를 위한 저항과 투쟁이 실제로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센은 역설한다. 그의 주장을 따라가다보면 온전한 사회 발전을 위해 무엇을 실천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은 2001년 번역돼 나왔다가 절판됐는데 출판사를 옮겨 재정비해 다시 출간됐다. 이번 책의 감수·해제를 맡은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아마티아 센에 대해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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